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꿈은 이루어진다 본문
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단상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 모든(?) 국민의 염원을 담아 '대~한민국'을 외쳤던 바램들이다.
그리고 그 온 에너지를 받아 나라 전체가 불게 물들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도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내 작은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양성장 신부님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8년간 부관구장을 하시다가 다시 예수회 연학수사들의 양성장으로 부름을 받으신 분,
그래서 어느 누구 보다도 예수회 한국관구와 세계 예수회를 잘 아시는 분,
그분의 넓은 시야는 양성을 받는 젊은 예수회원들을 더 잘 키우실 수 있는 분,
그리고 고맙게도 내 꿈에 손수 하느님의 뜻을 담아 신학지 결정을 통보해 오신다.
신학지를 청하면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을 1순위를 적어 냈지만 그것은 단지 꿈이었다.
실습지를 청하면서 역시 그 사유를 관구장 신부님께 전했지만
이런저런 예수회 한국관구의 사정을 들으면서 그 꿈은 마음 한 쪽으로 미루어둔 상태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곳에서의 Missionary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는
소박한 항의(?)의 표시로 당연히 신학지 1순위로 그곳을 청해 두었다. 전혀 기대도 없이...
실습지를 앞에두고 '내 가난함을 체험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청했다.
그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청원드렸는데
1.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
2. 순명에 대해서 깊게 숙고할 수 있는 곳(장상과의 관계 등)
3. NGO단체에서 실무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곳,
4. 아프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곳,
5.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
이런 기준에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 지금의 '이웃살이'다.
그러고 보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이지만 관구장 신부님을 비롯한 양성위원들은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도구로 잘 꽃 필 수 있을지를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신다.
이웃살이에서 선물로 받은 내 약점과 강점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신학지를 앞두고 이미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신학공부'를 한 터에
선택지가 조금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1순위는 항상 미래의 사도직 할 일본이었다.
2,3순위였던 스페인과 로마는 미래 사도직을 위해 '영성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예수회가 태동하고 성장한 예수회 고유의 영성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이들에게서 좋은 선물들을 많이 받았음에도
수도자로서의 '영성'에 대한 갈망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1540년 예수회가 설립되고 이냐시오 성인의 동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발 디뎠던 곳,
오래 가톨릭 전통과 예수회 초기 시절부터 줄기차게 동양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곳,
여전히 세계 예수회가 시선을 두고 있고 자국 예수회원들보다도 외국의 회원들이 더 많이 사는 곳,
늘 같은 동양문화권이면서도 한국과 다르게 자국 예수회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관구장 일 가운데 세계 예수회원들에게 예수회 일본관구로 와 달라며 리쿠르팅을 해야 하는 실정,
그래서 지척에 있는 예수회 한국관구에서 젊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파견하는 곳,
그렇지만 여러 어려움들이 있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빈번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 등 등
예수회 일본관구와는 이렇게 인연이 깊으면서도 또 인연을 쌓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얼마 전에 한구을 방문했던 하야시 신부님과 이상원 신부님의 역할도 컸겠다.
70이 넘으신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역시나 화곡동 신학원을 방문해서 리쿠르팅을 하셨단다.
관구장 신부님과 면담도 하시면서 분명히 자국으로의 한국 예수회원을 초대하셨으리라.
그러면서 단 두 분이지만 이상원/구정모 신부님이
다행히 일본관구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계시기에
한국 예수회원들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몸짓을 하고 계신다.
관구장 신부님께서도 일본에서 신학을 하셨던 인연이 있는지라 생각하시는 바가 깊으시리라.
최근 원하는 이들이 없어 일본으로 신학을 보내지 않았는데
다행히 당신을 만날 때마다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으니
'옳거니' 무릎을 치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3년 전 일본 실습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유로 일본으로의 파견이 보류되었지만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수도회 장상을 통해 드러난다는 신뢰를 두면서도
가슴속 품었던 꿈은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금 밝혀 주리라는 믿음에
동북아시아권 예수회 상황과 또 나의 공공연한 꿈에 대한 나눔들이 현실로 드러나게 되면서
참으로 하느님의 뜻은 알 길이 없다는 감탄이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에 '진즉에 실습을 보내줬다면 신학을 바로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움이 찾아 들기도 하지만 이웃살이에서의 실습으로 더 간절해진 어떤 것이 있으니
전혀 손해 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아침 두근 거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작은 걱정들이 있으니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음식이며, 일상 삶들에 너무 편하게(?) 신학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실컷 영어 공부해 왔는데 다시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부터,
일본에서도 한국관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사도직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적어
기껏 영성신학을 공부했는데 평생 사회사도직으로 파견하는 것은 아닌지 등 등
별 쓸데없는 걱정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런 걱정들은 지금껏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살아온 내게는 힐끗 웃음일 뿐이다.
3년 전, 일본으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관구장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오늘 나는 일본으로 신학하러 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렇게 숨은 꿈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나는 그 길 끝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저 묵묵히 한 발 내딛고 부단히 삶이 미는대로 쫓아갈 뿐이다.
그렇게 맡겨 두고 사는 삶도 살아볼 만 하다.
그래 보인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복음말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단상
'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 모든(?) 국민의 염원을 담아 '대~한민국'을 외쳤던 바램들이다.
그리고 그 온 에너지를 받아 나라 전체가 불게 물들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도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내 작은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양성장 신부님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8년간 부관구장을 하시다가 다시 예수회 연학수사들의 양성장으로 부름을 받으신 분,
그래서 어느 누구 보다도 예수회 한국관구와 세계 예수회를 잘 아시는 분,
그분의 넓은 시야는 양성을 받는 젊은 예수회원들을 더 잘 키우실 수 있는 분,
그리고 고맙게도 내 꿈에 손수 하느님의 뜻을 담아 신학지 결정을 통보해 오신다.
신학지를 청하면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을 1순위를 적어 냈지만 그것은 단지 꿈이었다.
실습지를 청하면서 역시 그 사유를 관구장 신부님께 전했지만
이런저런 예수회 한국관구의 사정을 들으면서 그 꿈은 마음 한 쪽으로 미루어둔 상태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곳에서의 Missionary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는
소박한 항의(?)의 표시로 당연히 신학지 1순위로 그곳을 청해 두었다. 전혀 기대도 없이...
실습지를 앞에두고 '내 가난함을 체험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청했다.
그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청원드렸는데
1.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
2. 순명에 대해서 깊게 숙고할 수 있는 곳(장상과의 관계 등)
3. NGO단체에서 실무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곳,
4. 아프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곳,
5.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
이런 기준에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 지금의 '이웃살이'다.
그러고 보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이지만 관구장 신부님을 비롯한 양성위원들은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도구로 잘 꽃 필 수 있을지를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신다.
이웃살이에서 선물로 받은 내 약점과 강점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신학지를 앞두고 이미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신학공부'를 한 터에
선택지가 조금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1순위는 항상 미래의 사도직 할 일본이었다.
2,3순위였던 스페인과 로마는 미래 사도직을 위해 '영성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예수회가 태동하고 성장한 예수회 고유의 영성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이들에게서 좋은 선물들을 많이 받았음에도
수도자로서의 '영성'에 대한 갈망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1540년 예수회가 설립되고 이냐시오 성인의 동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발 디뎠던 곳,
오래 가톨릭 전통과 예수회 초기 시절부터 줄기차게 동양 선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곳,
여전히 세계 예수회가 시선을 두고 있고 자국 예수회원들보다도 외국의 회원들이 더 많이 사는 곳,
늘 같은 동양문화권이면서도 한국과 다르게 자국 예수회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관구장 일 가운데 세계 예수회원들에게 예수회 일본관구로 와 달라며 리쿠르팅을 해야 하는 실정,
그래서 지척에 있는 예수회 한국관구에서 젊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파견하는 곳,
그렇지만 여러 어려움들이 있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빈번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 등 등
예수회 일본관구와는 이렇게 인연이 깊으면서도 또 인연을 쌓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얼마 전에 한구을 방문했던 하야시 신부님과 이상원 신부님의 역할도 컸겠다.
70이 넘으신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역시나 화곡동 신학원을 방문해서 리쿠르팅을 하셨단다.
관구장 신부님과 면담도 하시면서 분명히 자국으로의 한국 예수회원을 초대하셨으리라.
그러면서 단 두 분이지만 이상원/구정모 신부님이
다행히 일본관구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계시기에
한국 예수회원들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몸짓을 하고 계신다.
관구장 신부님께서도 일본에서 신학을 하셨던 인연이 있는지라 생각하시는 바가 깊으시리라.
최근 원하는 이들이 없어 일본으로 신학을 보내지 않았는데
다행히 당신을 만날 때마다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으니
'옳거니' 무릎을 치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3년 전 일본 실습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유로 일본으로의 파견이 보류되었지만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수도회 장상을 통해 드러난다는 신뢰를 두면서도
가슴속 품었던 꿈은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금 밝혀 주리라는 믿음에
동북아시아권 예수회 상황과 또 나의 공공연한 꿈에 대한 나눔들이 현실로 드러나게 되면서
참으로 하느님의 뜻은 알 길이 없다는 감탄이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에 '진즉에 실습을 보내줬다면 신학을 바로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움이 찾아 들기도 하지만 이웃살이에서의 실습으로 더 간절해진 어떤 것이 있으니
전혀 손해 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아침 두근 거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작은 걱정들이 있으니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음식이며, 일상 삶들에 너무 편하게(?) 신학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실컷 영어 공부해 왔는데 다시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부터,
일본에서도 한국관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사도직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적어
기껏 영성신학을 공부했는데 평생 사회사도직으로 파견하는 것은 아닌지 등 등
별 쓸데없는 걱정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런 걱정들은 지금껏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살아온 내게는 힐끗 웃음일 뿐이다.
3년 전, 일본으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관구장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오늘 나는 일본으로 신학하러 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렇게 숨은 꿈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다.
나는 그 길 끝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저 묵묵히 한 발 내딛고 부단히 삶이 미는대로 쫓아갈 뿐이다.
그렇게 맡겨 두고 사는 삶도 살아볼 만 하다.
그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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