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자라서 나무가 되어... 본문
1독서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복음말씀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단상
아침마다 향을 불사르다 보니 온 방 안에 향내가 깃든다.
몸 안에도, 걸어 둔 옷에도, 심지어 책 사이에도...
한 숨 한 숨 들이키는 향내는 머리는 물론 마음에까지 이른다.
아침의 고요함에 맑은 향내까지 더해지니 山寺의 정경이 저절로 펼쳐진다.
오늘의 말씀을 입에 올려 두고 산중의 스님이 불경을 노래하듯 조용히 읊조린다.
차가운 마음 밭에 '믿음' 이라는 씨앗 하나 심는다.
하느님이라는 대지에 여린 싹을 틔우고
모진 비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희망을 품고 자라더니
나무 그늘에 찾아 드는 이가 있고, 하늘의 새들도 몸을 깃든다.
오늘 말씀에 대한 내 삶의 스치듯 이미지가 그렇다.
먼 길 찾아온 친구가 기도에 들어오고
그이와 나눈 따뜻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하나 둘 대화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하는 일들,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바라고 희망하는 꿈들,
잊지 않고 덜 여문 수도자에게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그이의 기도를 더한다.
마주잡은 두 손에 따뜻함을 담고 아쉬움 가득한 미소로 그이의 삶을 배웅한다.
저이를 또 언제 볼 수 있으려나,
오랜 만의 한국 방문에 차가워진 가을 바람까지,
그이가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아야 할텐데....
기도 말미에 미안함과 고마움과 설레임을 담아
인연을 만들어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복음말씀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단상
아침마다 향을 불사르다 보니 온 방 안에 향내가 깃든다.
몸 안에도, 걸어 둔 옷에도, 심지어 책 사이에도...
한 숨 한 숨 들이키는 향내는 머리는 물론 마음에까지 이른다.
아침의 고요함에 맑은 향내까지 더해지니 山寺의 정경이 저절로 펼쳐진다.
오늘의 말씀을 입에 올려 두고 산중의 스님이 불경을 노래하듯 조용히 읊조린다.
차가운 마음 밭에 '믿음' 이라는 씨앗 하나 심는다.
하느님이라는 대지에 여린 싹을 틔우고
모진 비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희망을 품고 자라더니
나무 그늘에 찾아 드는 이가 있고, 하늘의 새들도 몸을 깃든다.
오늘 말씀에 대한 내 삶의 스치듯 이미지가 그렇다.
먼 길 찾아온 친구가 기도에 들어오고
그이와 나눈 따뜻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하나 둘 대화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하는 일들,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바라고 희망하는 꿈들,
잊지 않고 덜 여문 수도자에게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그이의 기도를 더한다.
마주잡은 두 손에 따뜻함을 담고 아쉬움 가득한 미소로 그이의 삶을 배웅한다.
저이를 또 언제 볼 수 있으려나,
오랜 만의 한국 방문에 차가워진 가을 바람까지,
그이가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아야 할텐데....
기도 말미에 미안함과 고마움과 설레임을 담아
인연을 만들어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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