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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다시 또 부자의 헌금 본문

매일의 양식

다시 또 부자의 헌금

해피제제 2011. 11. 21. 07:11
1독서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복음말씀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주었기 때문이다."


단상

내년도 수도회 입회자들이 결정되었다는 이메일을 전해 받았다.
올해 10명이 심사를 받아서 그 중 8명이 입회 결정 되었다.
작년에 다섯, 올해 넷이 더니 예전 7-8명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라 다행이다 싶다.
남자 수도회가 입회자가 없어 성소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아는터에
끊임없이 예수회로 젊은 청년들을 보내 주고 계시니 감사할 일이다.

관구본부에서 보내 온 개개인의 프로필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소위 세상에서 일등 신랑감들이라 불리울 형제들이 많다.
카이스트 수리과학 박사도 있고,
가장 잘 나가는 분야인 서울대 우주항공공학과 출신도 있고,
어디를 내놔도 훤칠한 외모에, 쟁쟁한 학벌까지
게다가 오고가며 성소모임에서 만났던 지원형제들의 인성은
'에구 장가들 가서 알콩달콩 살면 잘 살겠고만 머하러 수도원 같은 델 들어오겠다고...'하며
혀를 찰 정도로 여러가지로 빼어난 형제들이었다.
그러면서 저 형제들과 예수회에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살며시 삐집고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 욕심이다. 

입회 허락을 받은 친구들은 지금 당장은 '과부'된 입장처럼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 말도 맞다. 

그러나 수도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수없이 질문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이 삶에 괜찮은 직장도,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심지어 말리는 가족도 떼어 놓고 왔는데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의미의 풍족함들 통해서 다시금 새로운 욕심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자꾸만 고개를 빳빳히 쳐드는 교만함이 그렇고,
내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허영심이 그렇고,
첫째 자리에만 앉고자픈 명예심이 또한 그렇다. 
신성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세상과 또다른 앎을 깨달아가는 삶에 우쭐해져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기 쉽다.
내가 그렇지 않으려 해도 깨어 살고자 노력한다 해도 나를 그 지위로(?) 높이는 이들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한 번 두 번 맛을 들이다보면 어느덧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져 있게 된다.
자신은 그것도 인지하지 못한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게 또 어려운 것이 인간의 본성은 편한 곳으로 흐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지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다해도 어느새 사람들에 휩쓸려 사는 거라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예수회원의 삶이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서 혼자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한 복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하느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인지라
그것을 몸소 살아보지 않고는,
그리고 그 단계들을 온 몸으로 겪어 보지 않고는 알아 차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 버리고 수도 삶을 택했다고 자부하겠지만
한 해를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흔들대며 사는 것을 보게 될테고
그러면서 또 그렇게 흔들대며 수도 삶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을 때까지는
또 하느님에, 수도회에, 형제들에, 자기자신에 실망하여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 동기가 9명 입회 허락을 받았고 7년이 지난 지금
6명이 살고 있는 것도 그런 과정을 지나 온 것이고 또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다. 

풍족한 가운데 과부 보다 많은 돈을 내는 이가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듣게 될 것이다.
과부 처럼 궁핍한 가운데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수도자의 삶을 시작했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게 수도생활하고 있다는 교만함이 찾을 들고,
또 그렇게 당연스럽게 대접 받는 데에 익숙해지면

어느사이 그 형제는 풍족한 가운데 많은 돈을 낸 부자의 마음가짐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고마운 것도 감사할 것도 별로 없고, 옷만 수도자인 체 하고 걸치고 살아가는 삶,
마음은 점 점 얼음처럼 차가와져서 젠틀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결여된 삶,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지만 제대로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삶,
세상의 현실에 눈도 귀도 막고 살며 어느새 거룩함 뒤에 숨어 사는 삶,

자신들이 무슨 잔을 선택했는지 지금은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랑에 눈이 멀어 시작한 삶이지만
하나 둘 냉정과 열정사이 수도삶을 살아가면서 그 질문에 우연히 맞닥뜨릴 때
비로소 홀로 하느님 앞에 서서 자신의 길을 진지하게 질문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또 한 번 고통스럽게 그러나 굳건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삶을 선택한 8명의 형제들의 삶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그이들의 고군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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