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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작은 형제들의 모임 본문

매일의 양식

작은 형제들의 모임

해피제제 2011. 11. 20. 07:14
1독서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독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복음말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단상

시계를 보니 5시 56분 무려 1시간 가까이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잔 것이다.
5시 눈을 떠지지 않으려는 눈을 뜨고 가까스레 앉았다가 그렇게 하염없이 잠을 잔 것이다.
화들짝 놀라 깨었더니 목이 아프고 눈은 퉁 퉁 부은 것이 눈을 뜰 수도 없을 지경이다.
간만에 산행에, 산행 후 한 잔 막걸리에, 또 뒤숭숭한 꿈자리에 눈이 떠지지도 않는다.

국민대입구에서 만나 대성문을 거쳐 대남문 그리고 구기터널 쪽으로의 산행 코스다.
길 안내를 자처한 김정택 신부님은 이 길이 손들이 가장 적은 한적한 산길이란다.
처음부터 대성문까지 줄곧 올르기만 하는 길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넷이 동행을 했다.
내년이면 학교사도직에서 정년을 맞는다는 김정택 신부님
1979년 처음 전임으로 시작해서 30년을 가르치는 일로 학교에 머물러 계셨다.
그러면서 당신을 지킨 것은 지금껏 주말 산행이라신다. 건강도, 수도삶도....

(해당부분은 당사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

신학원 철학1반 백광식 수사님은 잿밥에 관심이 많아서 왔다고 한다.
산행 후에 있을 저녁식사에 막걸리와 도토리묵이면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무래도 사람이 좋아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을 괜히 잿밥에 비유한다.
서원 후 다시 시작하는 공부 스트레스를 이렇게라도 풀어야 할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도 같다. 산이 좋아 사람이 좋아 그게 수도 회원이라면 더 좋겠다.
딸랑 3명인 바우네 공동체에서 운동은 '내 사전에 없다' 절대 사절 동기수사님은
비장의 무기 '땅콩 사줄께'라며 아무리 꼬드겨도 산행은 싫고,
신부님도 가끔 함께 산책은 하지만 먼길 산행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드신다.
그래도 매일 저녁 후 30분 산책이면 좋다 하신다.

형제들과 3시간 30분 정도를 걸었다.
산길이라 그런지 사람이 좋아 그런지 기분은 훨 유쾌하다.
간밤 비바람에도 아직 꿋꿋이 붙어 있는 곳곳의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이 눈에 가득 찬다.
날이 밝으면 0도에 다음주면 영하로 떨어진다니 오늘 이 길이 마지막 가을산행일 듯싶다.
떼굴떼굴 방을 구르다가 마음먹고 떠나오길 잘했다.

오랜 산행 경험이 있는 길안내 신부님 덕분에 완급조절을 잘 해주신다.
처음 간단한 산행이라는 말에 지하철 입구 좌판 할머니에게서 사들인 쑥떡이 전부인데
신부님은 사과에 귤에 홍삼 맛 나는 젤리까지 한 가방을 지고 오셨다.
가방도 없이 젊은 몸이기에 딸랑 물 한 병만 사들고 온 신학원 수사님,
진짜로 아무 것도 없이 무거운 몸만 간신히 챙겨 오신 부소장 신부님,
그런 우리에 비해 후배들을 먹이고 챙기고 하는 정성에 '저렇게 늙어야 하겠구나' 하며
우리들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는다. 가방이 제법 무거우셨을텐데...

구기터널 입구에 밥을 먹는 자리에는 세 분이 더 찾아 오셨다.
KFC 인자한 할아버지를 닮은 류장선 신부님은 이미 아침부터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셨고,
이 모임과 상관 없이 상명대에서 회의가 있으셨다가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슬슬 걸어오셨다는
김산춘 신부님, 그리고 이 모임의 주관자 역시 사회학과 교수모임에 붙잡혔다가 서둘러 마치고
부랴부랴 오셨다는 오세일 신부님, 이렇게 삶의 순위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다른 급한 일도 많지만 형제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예수회 안에서 계속 만들어 가자는 다짐에
아무리 바쁘고 급한 일들이 많아도 다른 이들과의 산행도 좋지만
어쩌면 개인들의 사도직으로 소원해지기 쉬운 수도 가족들 간의 관계에
이렇게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산행과 운동을 번갈아 가며 시작한다면
마음으로 멀리 떨어진 형제들에게도 심리적으로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다.
내 말이 아니라 은퇴하신 어른 신부님 부터 이제 서원을 막 하고 공부를 시작한 수사님까지
저마다 삶의 순위를 어디에다 두느냐를 논의하면서 공통적인 의견이다. 

어린 수사들은 선배 예수회원들에게서 배우고
선배 예수회원들은 이제 막 수도삶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자극을 받으면서
말뿐인 '한 형제'가 아니라 각자의 살아온 삶과 살아가는 삶을 나누면서 
그렇게 서로를 수도삶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켜주고 격려하며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상한 잠 버릇에 목도 아프고, 꿈 속에서 엉 엉 울었는지 두 눈은 퉁 퉁 붓고,
경사가 급한 산행이라 알이 잔뜩 배긴 양쪽 다리가 영 내 몸 같지 않지만
그래도 어제를 돌아 보면서 그 만남에 괜히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이
정말로 수도회를 사랑하고, 함께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들을 확인하는 자리였기에
비명을 지르는 몸뚱이가 오히려 잊고 싶지 않은 몸에 새겨진 추억이 된다.
알뜰살뜰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 또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급한 사정에
함께 하지 못했다는 모임 주관 신부님과 신학원 수사님의 전언에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오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지는 이 작은 모임에 하느님의 축복을 더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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