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또 떠나야 할 때다 본문
1독서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2독서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복음말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단상
며칠 전 양성장 신부님을 통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내용인즉슨,
내년 신학과정 준비를 위해 본인에 대한 청원서 작성과
내신서를 써 줄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청원서 작성은 2년 실습기의 종합적인 반성과
하느님 대전 앞에 약속했던 삼대서원 청빈, 정결, 순명
그리고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을 성찰하고
또 앞으로의 자기양성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예수회에 청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신학을 할 곳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곳으로 가야하는지 이유와 함께 장래사도직과 연결해서 청원하게 된다.
내신서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가까운 공동체와 사도직장의 형제들의 입을 빌어
나의 장점, 단점, 강점과 약점들을 그이들의 시선을 구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잘(?) 써줄 수 있는 형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의견을 더해 줄 형제들이다.
이는 한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정보가 아니라 여러 형제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공통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짜 그 사람'에 대한 것이다.
청원서와 내신서에 대한 메일을 받고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도 따라 올라온다.
수련원에서 신학원으로, 신학원 철학기에서 실습기로,
그리고 이제 실습기에서 마지막(?) 신학기를 맞이하면서 이 과정을 또 거치게 된다.
몇 번이나 당했던(?) 경우지만 매번 새롭다.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과 소망과 꿈을 청원하고
주위에서 함께 살았던 여러 형제들이 나에 대해 주관적이고
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더하니
성령님의 활동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드러나는지 알게 된다.
더불어 또 다음 단계로의 청원서를 준비하면서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보고 나누었던 가족들의 소망처럼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은
여지껏 그랬듯 그를 기르고 성장케하는 것은 하느님의 몫이다.
자꾸 더해지는 생각에 생각들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또 내가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들이니
잠시 놓아둘 일이다.
지금껏 당신께 '신뢰'하나 두고 이 '약속의 자리' 청하며 살았으니
청원서든 내신서를 빌미로 자꾸 '땅콩 사내라' 요구가 많은 동기 수사님이든
그냥 '기르고 양육하시는 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것을 믿고 몸과 마음을 비워 볼 일이다.
또 떠나야할 때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2독서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복음말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단상
며칠 전 양성장 신부님을 통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내용인즉슨,
내년 신학과정 준비를 위해 본인에 대한 청원서 작성과
내신서를 써 줄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청원서 작성은 2년 실습기의 종합적인 반성과
하느님 대전 앞에 약속했던 삼대서원 청빈, 정결, 순명
그리고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을 성찰하고
또 앞으로의 자기양성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예수회에 청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신학을 할 곳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곳으로 가야하는지 이유와 함께 장래사도직과 연결해서 청원하게 된다.
내신서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가까운 공동체와 사도직장의 형제들의 입을 빌어
나의 장점, 단점, 강점과 약점들을 그이들의 시선을 구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잘(?) 써줄 수 있는 형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의견을 더해 줄 형제들이다.
이는 한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정보가 아니라 여러 형제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공통적으로 '이 사람'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짜 그 사람'에 대한 것이다.
청원서와 내신서에 대한 메일을 받고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도 따라 올라온다.
수련원에서 신학원으로, 신학원 철학기에서 실습기로,
그리고 이제 실습기에서 마지막(?) 신학기를 맞이하면서 이 과정을 또 거치게 된다.
몇 번이나 당했던(?) 경우지만 매번 새롭다.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과 소망과 꿈을 청원하고
주위에서 함께 살았던 여러 형제들이 나에 대해 주관적이고
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더하니
성령님의 활동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드러나는지 알게 된다.
더불어 또 다음 단계로의 청원서를 준비하면서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보고 나누었던 가족들의 소망처럼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은
여지껏 그랬듯 그를 기르고 성장케하는 것은 하느님의 몫이다.
자꾸 더해지는 생각에 생각들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또 내가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들이니
잠시 놓아둘 일이다.
지금껏 당신께 '신뢰'하나 두고 이 '약속의 자리' 청하며 살았으니
청원서든 내신서를 빌미로 자꾸 '땅콩 사내라' 요구가 많은 동기 수사님이든
그냥 '기르고 양육하시는 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것을 믿고 몸과 마음을 비워 볼 일이다.
또 떠나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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