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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불을 지르러 왔다 본문

매일의 양식

불을 지르러 왔다

해피제제 2013. 6. 30. 13:59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 루카 9,54b

 

공동체 구성원의 대다수의 식별에 대해서 

더 큰 책임을 맡은 이가 개인적 식별 끝에 다른 결정을 내렸고

다른 이들도 각자의 식별을 더해 처음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각자가 하느님의 뜻을 찾아 올바른 식별을 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서로의 대치라면

구성원 간의 기대와 이해와 믿음과 신뢰가 와르르 무너졌다면

남은 것이 억울함과 실망과 분노와 배척만이라면

처음부터 진정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것인가!

 

이냐시오의 식별이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라 배웠다.

고통 중에도 평온함으로,

슬픔 중에도 희망으로,

실패 중에도 용기로,

화나, 분노나, 배척이 자리잡을 그런 질 낮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배웠다.

 

올바른 식별이라면 그게 세상이 말하는 실패일지라도

마음만은 '분노'에 자리를 내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되어 보인다.

'하느님 뜻'을 쫓는 식별이란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그래도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그리하여 지극한 자유로움 가운데

온유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라 알고 있다.

 

소식을 전하는 이의 분노가 얼마나 크던지

그 '화'의 기운이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닿더니

시간이 지나 다시금 하느님의 뜻을 새겨 듣는 중이라 여기면서도 

여전히 쩍 쩍 갈라져 보이는 분노 투성이의 하소연들에는

'상처와 용서'는 내 몫이 아님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영문모를 시선이기에 말을 아끼면서도

그래도 '기도하는 집'이기에

우리의 가난함에 '하느님의 뜻'을 쫓는 것에 용기를 내어

스스로가, 공동체가 서로에게 불을 질더대며 잿더미로 화하기 전에

작은 기도들이 모여지기를....

그렇게 기도를 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