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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스페인, 어느 선교사의 편지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스페인, 어느 선교사의 편지

해피제제 2020. 4. 8. 10:13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어느 선교사의 편지

 

성주간 월요일 (2010년 04월 06일) 기도의 향유

지금 스페인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오늘 날짜로 135.032명이고, 사망자가 13.055명이나 됩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로 전염병이 각지에 퍼져 있습니다. 현재 스페인 전국은 4월 11일 (토)까지 국가 비상 사태 상황입니다. 지역 간의 이동이 금지 되어 있고, 아무 이유 없이 집밖으로 나오면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비상사태는 의회 인준이 있으면 4월 26일까지 2주간 더 연장될 듯 합니다.

마드리드에서는 사망자 85%가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노인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아스토르가’에도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아스토르가 교구 신부님 몇 분도 돌아가셨습니다. 아스토르가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일 외에는 불가능하고, 오직 식품점과 약국만이 영업을 하고 다른 가게들은 모두 닫았습니다. 아스트로가에 들어가려면 경찰이 검문을 하고, 식품을 사는데 40분의 시간을 줍니다. 그리고 아스트로가에서 나올 때도 검문을 통과하면서 음식 재료를 산 영수증을 경찰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곳 라바날 수도원의 삶은 평온하지만 긴장 속에 있습니다. 스페인인 하비에르 신부님은 자가 격리에서 드디어 해방되어 공동체 삶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미사는 철저히 우리 수도자끼리만 합니다. 어제 성주간 시작인 성지주일 미사도 행렬도 없이 성당 현관 앞에서 우리 수도자 세 명과 우리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알베르게 ‘필라르’ 주인인 이사벨 자매가 함께 했습니다. 성지를 축복해서 독일인 비오 신부님이 그날 오후에 집집마다 전해주었습니다. 물론 현관 앞에 성지 가지를 두고 온 것입니다. 

경찰들이 우리 마을을 수시로 순찰을 돌고 얼마 전에는 방역도 했습니다. 통행금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잠깐 동네 산보를 하다가 경찰한테 걸렸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통행금지라는 것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탄 경찰 두 명에게 발각이 되어 신분증까지 보여주고 벌금을 물을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경찰들은 정말 심각했습니다.  

우리 수도원 바로 옆에 있는, 영국 순례자 협회에서 운영하는 ‘가우셀모’ 순례자 숙소는 통상 4월부터 10월말까지 문을 엽니다. 그러나 올해는 운영진들이 일단 6월까지 문을 열지 않고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이 걸어던 길은 철저히 비어 있습니다. 적막만이 흐를 뿐입니다. 새소리만 더 선명하게 들릴 뿐입니다. 봄이 왔음을 온갖 꽃들이 알리고 있지만 깊은 침묵만 흐를 뿐입니다. 언제쯤 순례길에 다시 생명이 흐를 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의 사람 소리가 그립습니다. 아마도 올해는 힘들 듯 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값찐 향유로 닦아 드린 이야기 (요한 12,1-11)를 들었습니다. 이성으로만 머리로만 바라봤기에 마리아의 그 행위를 비판했던 제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요한 12,7). 마리아의 행위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아니,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이해를 뛰어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향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상처와 고통과 불안과 눈물로 뒤덮힌 그리스도의 발을 기도의 향유로 내가 닦아드려야 합니다. 바이러스로 홀로 죽어가야 하는 이들, 그들을 돌보는 의료인들, 수 많은 모습으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의 향유가 온 세상을 덮을 때 바이러스도 분명 물러갈 것입니다. 또한 기도의 향유가 흐를 때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은 죄들도 씻겨질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현재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조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살짝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지금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합니다. 기도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