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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습관이란... 본문

매일의 양식

습관이란...

해피제제 2011. 8. 24. 07:41
1독서

천사가 나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복음말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단상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아버님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에 급히 군산을 찾았다.
전통이 있는 써클이라 3년간 아침 저녁으로 붙어 다녔던 친구다.
우리 기수 총무를 맡고 있던 친구라 항상 대소사를 직접 챙겼는데
상을 당한 터라 이번에는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넣고 서울지역 모임 회원들은 함께 내려가기로 하고,
군산에 있는 이들은 또 한 친구에게 부탁하여 문상을 안내 하였다.

내가 하는 이웃살이 사도직이 무엇인가 생산을 하거나 경쟁적으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닌지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사도직장 동료들에게 일을 부탁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군산이란 곳에서 초중고를 모두 다녔는데 오랜만에 방문인지 많이도 어색한 모습이다.
퇴근길이라 외항근처를 쭈욱 돌아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 무척 시원하다.
곳곳에 여전히 일본식 집들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처럼 시대를 달리해 있다.
지자체가 시작되면서 옛 건물들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손길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일제 때 쌀을 실어 나르던 도시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군산은 여전히 항구 도시다.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 친구라 문상객들이 많다. 그 다섯 형제가 모두 장가를 갔으니
내자되는 이들이 또 다섯이요, 한 둘의 자녀들이 더해지니 여기저기 아이들의 발소리,
웃음소리, 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가족들을 모두 모이게 하는 아버님의 마지막 선물이다.

15개월 된 딸을 안고 있는 친구는 내려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반가운 눈치다.
품 속에서 꼬물딱대는 '예나'라는 조그만 딸과는 완전 붕어빵이다.
그래도 벌써 앞머리가 훤하게 사라진 친구 녀석을 닮진 않겠지...

아버님이 고기잡이 배를 타셨는지라 방학이면 그 친구 집에 놀러가곤 했다.
그리고 꼬막이며 말린 망둥이 등 해조류 맛난 것들도 많이 얻어 먹었던 기억이다.
일흔 넷, 소천하시기엔 조금 이른 연세다 싶지만
뱃사람으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몸이라 일찍 기력이 쇠한 것은 아니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막내 상주를 혼자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밀려 오는 문상객들에게서 친구를 홀로 차지하고 있기엔 아는 얼굴들이 많다 싶다.
이렇게 분주한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는 오히려 염치 없어 보인다.
이만 올라가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길 다녀가는 친구에게 연신 미안해 하는 모습에 내가 더 미안해 진다.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그 미안함을 서로 달랜다.

군산에서 강남터미널로, 터미널에서 김포까지 왕복 9시간,
걷기도 하고, 지하철에 버스를 타면서 하루 일정이 빠듯하다.
간밤 1시쯤 잠자리에 들면서 5시 알람을 7시로 맞추어 두었다.
'내일은 늦잠을 좀 자야지' 하면서...

시계를 보니 5시 33분이다.
세상에! 언제 이렇게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목이 아파서 화들짝 깨어보니 평소 기도를 하던 자세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몽유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자리에 다시 누웠지만 오히려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저녁 잠자리에 들기전 읽어 두었던 1독서와 복음말씀을 상기하며 눈을 감는다.
묵시록의 장로 요한의 환시가 연결되고, 나타나엘의 놀람도 전해진다.
선종하신 친구 아버님을 기억하고, 기도를 부탁한 몇 몇 벗들도 떠올린다.
오늘 또 하루 선물로 주신 덕분에 함께 할 이들이 기도에 더해지고,
왕복하는 차 안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도 새록새록 다가온다.
살아갈 날과 함께 할 이들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 하루를 봉헌한다.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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