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아!" 체험 본문
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복음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단상
간 밤에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
선배 김영근 신부님의 아버지께서 선종하신 꿈이다.
그래서 또 부랴부랴 형제들과 함께 아버님 장례식장을 찾았다.
아버님 위패가 모셔진 곳은 어느 달동네의 한칸 짜리 집이었다.
아니 바위를 오르던 기억을 보면 '암자'같은 곳이었나싶다.
방 안에 들어서자 바로 정면에 아버님의 위패와 사진이 모셔져 있고
특이하게도 양쪽에는 아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신부님의 사도직이 청소년 관련 사도직인지라...)
댓돌에 신발을 벗어두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
딱 혼자서 절할 수 있을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문턱을 넘으면 바로 그자리가 내가 절할 수 있는 곳이다.
아버님 영전에 향을 불사르고
지긋히 아버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화하고
천천히 엎드려 절하는 데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에
엎드린 채로 그만 펑 펑 울고 말았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마치 막히 둑이 풀리듯...
그런데 울면서 드는 생각이
여기서 울지못하면 다시는 눈물 흘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 참을 엎드려서 우는데
꿈 속 장면에서 다시 한 번 환시(?)를 겪게 되었다.
아주 생생하게 꿈 속 신부님 아버님 영전에서 울다가
새로이 접신(?)이 들린 '만남'은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런데 누굴 만났는지 또렷히 떠올릴 수가 없다.
예닐곱 사람이 내 주위에 있는 것을 보았고
말을 건네 보았지만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일 뿐
그이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평안함이 가득차 오르는 것이
더 묻기 보다는 그저 머물러 그이들과 함께 있어 보았다.
김신부님 아버님 영전, 꿈 속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자
모두들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농을 걸어온다.
엎드려서 한참이나 울더란다
그래서 그렇게 울도록 내버려 두었단다.
그런데 나에게는 두 번의 연속적인 체험이
내 마음 속에서 딱 올라오는 것이 "아!'하는 탄성이었다.
신학원에서 "아!" 체험을 한 이후로
정말로 오랜만에 어찌 부정할 수 없는 '아!'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아 하느님이시구나"라는 체험을 말한다.
누군가 "그게 정말로 하느님 체험인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는다면
또 "하느님 체험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요"라고 부탁한다면
어찌 해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내가 알고 하느님이 알고 내 살아가는 꼴이 그분을 닮는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느낌이 하느님의 이미지가 이런 거라는 것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체험을 삶으로서 나눌어 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만나(?) 본 하느님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를 그리는 것은
그냥 꿈에 불과한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더라도 다른 이들 모두가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하느님 체험이라면
그저 묵묵히 그 체험을 몸에 새기고 간직하며 나아가 볼 일이다.
괜히 떠벌려서 '내가 하느님 체험을 했노'라고 소문낼 일이 아니다.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복음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단상
간 밤에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
선배 김영근 신부님의 아버지께서 선종하신 꿈이다.
그래서 또 부랴부랴 형제들과 함께 아버님 장례식장을 찾았다.
아버님 위패가 모셔진 곳은 어느 달동네의 한칸 짜리 집이었다.
아니 바위를 오르던 기억을 보면 '암자'같은 곳이었나싶다.
방 안에 들어서자 바로 정면에 아버님의 위패와 사진이 모셔져 있고
특이하게도 양쪽에는 아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신부님의 사도직이 청소년 관련 사도직인지라...)
댓돌에 신발을 벗어두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
딱 혼자서 절할 수 있을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문턱을 넘으면 바로 그자리가 내가 절할 수 있는 곳이다.
아버님 영전에 향을 불사르고
지긋히 아버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화하고
천천히 엎드려 절하는 데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에
엎드린 채로 그만 펑 펑 울고 말았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마치 막히 둑이 풀리듯...
그런데 울면서 드는 생각이
여기서 울지못하면 다시는 눈물 흘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 참을 엎드려서 우는데
꿈 속 장면에서 다시 한 번 환시(?)를 겪게 되었다.
아주 생생하게 꿈 속 신부님 아버님 영전에서 울다가
새로이 접신(?)이 들린 '만남'은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런데 누굴 만났는지 또렷히 떠올릴 수가 없다.
예닐곱 사람이 내 주위에 있는 것을 보았고
말을 건네 보았지만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일 뿐
그이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평안함이 가득차 오르는 것이
더 묻기 보다는 그저 머물러 그이들과 함께 있어 보았다.
김신부님 아버님 영전, 꿈 속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자
모두들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농을 걸어온다.
엎드려서 한참이나 울더란다
그래서 그렇게 울도록 내버려 두었단다.
그런데 나에게는 두 번의 연속적인 체험이
내 마음 속에서 딱 올라오는 것이 "아!'하는 탄성이었다.
신학원에서 "아!" 체험을 한 이후로
정말로 오랜만에 어찌 부정할 수 없는 '아!'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아 하느님이시구나"라는 체험을 말한다.
누군가 "그게 정말로 하느님 체험인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는다면
또 "하느님 체험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요"라고 부탁한다면
어찌 해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내가 알고 하느님이 알고 내 살아가는 꼴이 그분을 닮는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느낌이 하느님의 이미지가 이런 거라는 것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체험을 삶으로서 나눌어 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만나(?) 본 하느님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를 그리는 것은
그냥 꿈에 불과한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더라도 다른 이들 모두가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하느님 체험이라면
그저 묵묵히 그 체험을 몸에 새기고 간직하며 나아가 볼 일이다.
괜히 떠벌려서 '내가 하느님 체험을 했노'라고 소문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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