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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잘하고 있다 본문

매일의 양식

우리는 모두 잘하고 있다

해피제제 2022. 4. 15. 15:44

 

스페인에서 2년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일명 ‘까미노’라 칭하는 이 순례는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객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줍니다. 증명서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스포츠용’이고, 또 하나는 ‘종교용’입니다. 본디 예수님의 제자 성 야고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성지 순례는, 현대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걷어 낸, 수십일, 수백킬로를 걷는, 즉 익스트림 스포츠의 한 분야 처럼 변해 버린 모습입니다.

 

재미난 것은 현대의 유럽사람들은 주로 ‘스포츠용’으로 증명서를 받아 가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람들이 ‘종교용’ 순례 증명서를 받아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례 중에 만났던 몇 몇 한국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등 등 유럽사람들의 ‘익스트림 스포츠’ 보다는 ‘성찰을 위한 까미노’로 좀 더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순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순례 중에 만난 니키라는 한 한국인 청년이, 제가 천주교 사제라는 것을 알고 대뜸 하소연해 옵니다. “신부님, 저는 지금 제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한국을 떠나 왔지만, 생각은 커녕, 매일매일 몸은 천근만근이요, 발바닥은 난리도 아닌게, 물집이 생겨 걷기도 힘듭니다. 또 매일 밤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 고생스러움과, 매 순간 어느 길로 가야할지 불안함 속에 선택을 내려야 할 때는, 이 길이 맞는지, 혹 지나친 것은 아닌지 등 등, 매 순간 갈등의 연속 입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데다가 몸집도 왜소해서,까미노를 혼자 걷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뒤를 따르거나 동행을 하곤 하는데, 그것도 그쪽에서 말을 걸어 주어야 겨우 대꾸를 하고, 그 전까지는 혼자 속으로 옥신각신하는 제 모습이 참으로 한심할 지경입니다. 이런 모습을 매일같이 마주하면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또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제가 지금 정말로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젊은 청년의 하소연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니키씨, 니키씨는 지금, 집 앞 슈퍼마켓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슈퍼마켓을 갈 때는 부시시한 머리에, 화장 없는 맨 얼굴로 그냥 나가도 됩니다. 슬리퍼를 질 질 끌고 갈 수도 있고, 회사에 출근할 때의 말끔한 정장이 아닌 추리닝을 걸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듯 집 앞 슈퍼마켓은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는 내 익숙한 ‘나와바리’입니다. 그런데 이곳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전혀 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15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날라온 낯선 곳, 까미노를 하기 위해 매일 걸어야 할 낯선 길, 어디에서 하룻밤을 머물지, 오늘은 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매 순간 머리를 싸매고 결정해야 합니다. 내 집 앞, 익숙한 슈퍼마켓을 가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이 낯선, 엄청난 모험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천근만근, 발바닥의 물집, 매일의 고단함, 선택의 두려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입에 맞지 않은 음식, 잠잘 때의 다른 이들의 코골이 등 등, 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그랫듯이, 수십 번 넘어지고 부딪치고 까지면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것 처럼,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입으로 코로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요. 또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손가락이 저리고, 어깨가 결리고, 굽어지는 허리에 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곧추세웠듯이, 우리의 모든 모험은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두렵고 망설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니 니키씨가 ‘신부님! 제가 잘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네, 물론이지요. 니키씨는 지금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수십번 갈등과 선택을 해 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르면 다음 순례지로 고민스럽게 발길을 내딛던 젊은 청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익숙하고 안전한 그분 곁을 떠나,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파견하고 계십니다. 젊은 청년의 밤새 이어진 하소연이 제자들의 곡소리와 닮아 보입니다. ‘이제껏 예수님이 계셨기에 당신을 따르기만 하면 됐는데, 느닷없이 떠나가라 하시다니요. 게다가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겨가지 말라 하시다니요. 어디에서 머물지, 누구에게 신세를 질지,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할지, 저희에게 왜 이러십니까? 스승님, 저희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공생활 동안 제자들에게 모든 모범을 보이시며, 마치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듯,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던 예수님께서,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들! 당신들은 지금 너무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힘듦, 이 고됨, 이 지침, 이 두려움, 이 불안에,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또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주세요.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의 여정도 내가 함께 할테니 두려워 마세요. 여러분은 지금 너무 잘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해 주시는 주님, 당신 약속처럼 앞으로의 우리 남은 여정에서도 언제나 저희와 함깨 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