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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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EXODUS’ 천주교의정부이주센터를 다녀왔다.
일산 넘어 고양 인근의 어디쯤(?) 생각하고 지도를 조회하다가
이웃살이가 있는 통진과 정반대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고 난감해 했다.
다행히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초행길임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여정에 사흘 전 ‘이웃살이’를 찾은 베트남 여성과 그 아기가 동행했다.
한국인 남편에게 수차례 폭력에 시달리다
어느 날 남편을 피해서 살 길을 찾아 나선 이이다.
그런데도 귀신같이 이 여성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남편의 집요한 손길을 피해
지금도 이곳저곳 쉼터를 전전하고 있다. 이웃살이가 벌써 네 번째 쉼터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괴로울 지경이다.
특히 2개월 된 아기는 환경이 바뀌게 될 것을 민감하게 느껴서인지
이동하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오죽할까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체험일텐데,
이리 뽑히고 저리 묻히고 또 뽑히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듣도 보도 못한 주택가에,
이곳저곳 묻고 물어 이주센터 사무실을 찾는다.
다행히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 그이들의 환대에 정신이 없다.
가장 열렬한 환대를 해 주시는 엔젤 수녀님(필리핀),
얌전이 로슬린 수녀님(인도), 당찬 율리타 수녀님(인도네시아),
사무국장 형제님, 농 자매님(베트남 통역), 닌파 자매님(필리핀 통역)
그리고 일찍부터 센터에 마실나와 있던 국제결혼여성들과 아기들...
겨우 세 명 스텦이 전부인 이웃살이에 비해
아기자기 왁자지껄 4층 이주센터 건물이 온통 활기로 넘실댄다.
심지어 계단 청소를 하시며 반가이 맞아주시는
봉사자 자매님들의 표정에도 기쁨이 가득하다.
허재석 신부님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오늘 전국적으로 긴급 민방위 훈련이 실시중이라
약속시간에 늦었다며 연신 미안해한다.
괜찮다. 모두의 환대에, 인사만 나누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 말이다.
그런 내 반응에 안심을 했는지 아니면 평소에도 그러시는지 이미 센터에 놀러와 있는
이제 2개월 된 필리핀 여성의 아기 ‘지호’와 놀아주기에 정신이 없다.
아기 엄마가 아기 세례명으로 ‘준(요한)’으로 하기로 했다는 말에 입이 귀에 걸렸다.
신부님 세례명이 ‘요한’이시니 아기 엄마의 마음을 알고도 넘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11시 30분에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허 신부님, 김수남 상담 선생님, 통역 농 자매님, 의뢰인과 나,
그렇게 다섯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장장 네 시간여 동안의 상담과 나눔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마라톤 회의(?) 끝에 베트남 모자와 이주센터를 나선 것은 오후 3시 20분이 되어서였다.
허 신부님은 3시에 의정부교구청에서 '사회사도직 사제회의'가 있었다.
회의 시작 전에 2시에 자리를 파해야 한다며 또 미안함을 표하신다.
오늘 약속을 잡기 전에 이미 전해들은 것이라 나도 ‘괜찮다’ 화답한다.
하지만 웬걸 이미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상담 중에 연신 진동음이 울려댄다.
내가 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분명 교구청 회의 건 일텐데...
그러나 허 신부님께는 울려대는 전화벨에도 아랑곳없다.
온전히 당신 앞에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다.
그분에게는 온통 눈앞의 베트남 여성과 아기뿐이다.
허 신부님의 상담을 지켜보면서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이건 숫제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담’이 아니다.
사람을, 그것도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영혼의 치유자’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여성에게 ‘이곳은 안전한 곳입니다’를 전해주려는 노력,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라는 지속적인 믿음과 신뢰 보여주기,
동시에 ‘이 싸움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당신의 싸움입니다’라며 용기 불어 넣어주기,
“나는 두 가지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빠, 당신 그리고 아기가 함께 웃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림과
또 하나는 당신과 아기가 행복하게 사는 그림입니다.”라는
두 가지의 가능성 모두를 제시해 준다.
그래서 너무 쉽게(?) 안내해 버리고 마는 결론,
즉 “당장 이혼하세요”가 아닌 ‘남편과의 화해’를 우선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케하고
나아가 홀로 그 싸움과 마주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목자의 모습!
허 신부님과 베트남 여성의 만남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아침부터 서둘렀는지라 연신 ‘꼬록’대는 내 민망한 소리에
어느덧 밥시간을 훌쩍 넘긴 것을 알아챈 신부님은 ‘일단 여기까지!’라고 외친다.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공통의 미션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그러고보니 밥시간도 참으로 풍성하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둘러앉은 이 자리가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삶터이다.
필리핀 엄마를 둔 2개월 배기 ‘지호’가 방실방실 웃음 짓고,
엄마를 찾는지 베트남 아기는 여전히 눈물 투성이다.
인도네시아 율리타 수녀님이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서 밥을 먹는 엄마를 대신하고,
‘천국의 아이들’, 센터 벽에 걸린 포스터처럼 다양한 피부색의 아이들이
방과 후 다문화 공부방을 왁자지껄 드나들며
그이들의 방식으로 신부님과 스텦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깔깔대는 웃음으로, 수줍은 미소로 그리고 살며시 다가와 품에 안긴다.
그 사랑스런 모습들에 정말 부럽기만 하다.
이주센터를 나서면서 베트남 여성의 마지막 인사말이
허 신부님과 이주센터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렇게 오랫동안 제 이야기를 들어 준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곳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동안 저도 여러 쉼터를 돌아다니며 제 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고,
제가 먼저 용기를 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꼭 도와주세요.”
돌아오는 길의 차 안의 공기는 출발할 때의 아침과 별반 다름이 없다.
여전히 엄마 품에서 칭얼대는 아기는 또 먼 길 여정에 짜증스러움이 배어있다.
그러나 엄마인 베트남 여성에 얼굴에는 어느새 ‘희망이라는 생기’로 가득하다.
엄마의 용기 덕분인지 그 생기를 전해 받은 아기의 칭얼댐도 어느덧 잦아든다.
차 안으로 스며드는 하느님의 빛이 참으로 눈부시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 요한 3,34
하느님, 구리EXODUS 벗들과 그이들이 행하는 당신의 일과
또 그이들이 만나는 당신의 친구들에게 하느님 성령이 깃들기를....
* '매일의 양식' 나눔에 내용을 더해 다른 곳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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