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일본 예수회원들의 미션 본문
1독서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복음말씀
“너희는 너희가 무슨 잔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단상
공동체에 인사를 다니면서 혹은 일본으로 신학 하러 떠난다는 인사에
저마다 ‘신학지에서의 각오’를 묻는다.
.
“딱히 무엇인가를 정해 두고 신학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닿으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일본으로 보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감지덕지 고맙게 공부할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계획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선교사로 살아갈지도 정해 둔 것은 아닙니다.
관구장 신부님은 그냥 공부 끝내고 돌아오라 하시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신부님 말씀 역시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느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
지금은 그저 그이들의 문화를 익히고, 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우정을 나누면서 단순하게 살아보렵니다.
그이들은 그이 나름대로 질서를 이루며 생활해 왔고,
저는 단지 그이들 삶에 불쑥 끼어드는 것으로,
그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난데없는 날벼락 일 수도 있겠습니다. ^^”
.
처음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앓는 소리를 하며 올려 두었더니
댓글에 동기수사님이 그런다.
‘앓는 소리 말아라. 오히려 예수회 일본관구에서는 너 때문에 잔뜩 긴장할지도 모른다’ 라며
‘함께 살았던 동기생으로서의 소감’을 대번에 올려 두고 만다.
안 그래도 까칠한 한국산 싸움닭이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몸을 들이밀며 함께 살겠다고 방 하나를 차지하려 하니,
그이들의 평온한 수도생활을 위해서라도 그저 애먼 발톱 드러내지 말고
제발 조용히, 조용히 지내다 오라는 주문이다.
.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구장 신부님의 나눔이 인상 깊다.
‘예수회 일본관구는 270 여명의 회원들이 있습니다.
약 100명 정도가 일본 회원이고 나머지 170 여명은 외국에서 온 회원들입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은 학교 사도직, 피정지도, 본당사도직, 사회사도직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의 희생과 봉사를 보면서
단순히 어떤 “일”을 훌륭히 해낸다거나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것 너머의 또 다른 “어떤 것”을 봅니다.
그저 자국을 떠나, 멀리 이국에서 살아감으로써 그 살아가는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미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성과”를 위해서는 다른 곳도 많습니다.
딱히 일본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어쩌면 척박해 보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택해서
자기의 바램이나 기대도 버리고, 그저 천주교 수도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로,
그럴 수만 있다면 일본 관구에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일본에 도착한 이래로
수많은 성인의 후예들이 일본으로 미션을 떠났고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또 그렇게 일본에서 선종했다.
박해 시대 때에는 바오로 미키 성인이 있었고,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예수회 총장이셨던 베드로 아루페 신부님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곳에서 수련장으로 계시면서
수련원 건물을 병원 시설로 개조하여 외과의사로서 활동하셨다.
.
이렇게 오랜 세월 예수회 일본 관구에서는 많은 선교사들이
그이들이 가진 재능, 지식, 달란트에 상관없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렇게 썩어 간 곳이다.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또 그렇게 줄기차게 달려가
‘한 알의 썩을 밀알’이 되어야만 하는 곳이 일본이라는 나라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예수회 일본관구에 사는 예수회원들의 미션이다.
어떤 열매가 맺혀질지 모른 채, 모든 기대도 버리고 그저 밀알이 되는 것,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며 살라는 뜻이리라.
.
주님, 선교의 하비에르 성인의 후예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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