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지혜의 비밀 본문
1독서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복음말씀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상
교회 때문에 상처 받고,
그래서 교회를 떠났던 이가 스스로 답을 찾는다.
"내가 성당의 신부님을 보고 하느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그분을 뵙고 교회와 신부님께 순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이 '순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답은 그분이 스스로 밝혀 냈다.
'순명'이란 '하느님 뜻'을 알아 보고 그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매님의 말씀처럼
아직은 어린아이같은 시선으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2000년 교회 역사를 통해 교회는, 지역 교회의 신부님은
교회에서 검증되고 가장 안전한 길로 주님의 양 떼를 인도하는 중이다.
그것이 교황님의 교서로 교회의 가르침으로, 신자들의 교리로 전해진다.
물론 이것도 엄마, 아빠인 성령의 뜻에 따른 가르침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손을 타고 쓰여진지라 중개자의 필터링을 거친 것이다.
고로 교리를 통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지혜를 받아 들였다지만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나는, 교회의 가르침에 "왜?"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왜 그런대?"라고 비판적으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또 물어서'
종국에는 교회의 가르침도 뛰어넘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체험한 하느님도 뛰어넘어서
내가 '얼굴을 마주보듯이' 주님을 만나뵙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서 그 가르침들에 '감사합니다'라고 탄성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1독서의 말씀처럼
지혜를 찾는 다는 것은 '가시밭길과 같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그 열매는 달고,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지혜의 비밀'을 밝혀 주시리라.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저에게 당신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복음말씀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상
교회 때문에 상처 받고,
그래서 교회를 떠났던 이가 스스로 답을 찾는다.
"내가 성당의 신부님을 보고 하느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그분을 뵙고 교회와 신부님께 순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이 '순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답은 그분이 스스로 밝혀 냈다.
'순명'이란 '하느님 뜻'을 알아 보고 그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매님의 말씀처럼
아직은 어린아이같은 시선으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2000년 교회 역사를 통해 교회는, 지역 교회의 신부님은
교회에서 검증되고 가장 안전한 길로 주님의 양 떼를 인도하는 중이다.
그것이 교황님의 교서로 교회의 가르침으로, 신자들의 교리로 전해진다.
물론 이것도 엄마, 아빠인 성령의 뜻에 따른 가르침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손을 타고 쓰여진지라 중개자의 필터링을 거친 것이다.
고로 교리를 통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지혜를 받아 들였다지만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나는, 교회의 가르침에 "왜?"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왜 그런대?"라고 비판적으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또 물어서'
종국에는 교회의 가르침도 뛰어넘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체험한 하느님도 뛰어넘어서
내가 '얼굴을 마주보듯이' 주님을 만나뵙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서 그 가르침들에 '감사합니다'라고 탄성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1독서의 말씀처럼
지혜를 찾는 다는 것은 '가시밭길과 같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그 열매는 달고,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지혜의 비밀'을 밝혀 주시리라.
저와 함께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
저에게 당신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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