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B’학점 짜리 고해사제 본문
‘B’학점 짜리 고해사제
여름 방학과 동시에 계절학기를 강의를 수강해야 했다. 일본 천주교 형편에 얼마 안되는 신학생들을 위해 매년 '교회법' 과목을 개설할 수도 없고, 해서, 서품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격년에 한 번씩 남들 다 쉬는 여름방학에 하루죙일 집중강좌를 들어야 한다. 올해는 수강생이 다섯임에도(그중 신학생이 3명) 해당 과목을 위해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부러 선생님을 불러 들이고 있으니 괜히 '방학인데...'라며 심통을 부릴 수도 없다.
수업은 철저히 사례 위주로 이루어진다.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적용한 사례 연구. 선생님이 고해자가 되고 그 내용에 맞추어 신학생들이 성사를 주는 식이다. 난이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살이에 고해내용도 덩달아 까다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서 애먼 신학생들도 덩달아 고생스럽다. 처음에는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9년째 수도생활을 해 오면서 귀동냥 눈동냥 한 것이 있으니 내심으로는 '이런 것 쯤이야' 싶었다. 마지막 고해성사시험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겠지 자신했다. 고해성사의 흐름을 보면 '고해자가 죄를 고백해 오고', '고해사제는 죄의 유무와 경중을 따져 성사를 준다'…는 흐름이 당연하다. 해서 신학생들의 관점은 배운 지식에 근거한 죄의 '유무판단', 그에 따른 '알맞은 성사'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다보니 우리들은 고해를 듣고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죄탐구’에만 몰두해 있는 신학생들에게 마침내 선생님께서는 한 마디 해 오신다. "여러분들은 너무 엄격한 것 같다. 그도 그런 것이 여러분은 여지껏 착한 그리스도인 청년들로서 별로 큰 실패나 실수 없이 무난히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과 같다. 이제껏 율법에서 요구된 것들은 하나도 어기지 않고 성실히 지켜온 부자 청년의 모습 말이다. 그래서인지 죄를 짓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해 보인다. 스스로가 큰 죄를 지어본 적이 없으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무엇인가 실수를 하고 그 실패를 통해 넘어지거나 바닥을 쳐 본 경험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고 받아들여지는, 사랑받는 체험을 해 본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몇 번인가 같은 충고를 해 주셨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해당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신학생들과, 또 사례에 알맞게(?) 성사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선생님의 예상처럼 인생에서 크게 실패한 경험이 없는 착한 신학생들은 아직은 교회가 제정한 법률과 각종 규칙에 기대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인다. 살면서 좀 더 찐하게 깨져보고, 크게 넘어져 보기도 하면서 바른생활 청년의 틀을 깰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는 과정에서 또 자신들이 얼마나 크게 용서받고 사랑받고 있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보인다.
내 이런 사정을 옆방 신부님께 털어 놓으니 맞장구를 쳐주신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해 주시기를 '그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해소까지 찾아 오는지 그 마음을 헤아려 주라' 하신다. '그 마음'을 붙들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득,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 성현의 지혜를 어렴풋이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달리 표현해 보면, 이 세상에서 살인과 같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살인을 저지렀던 사람의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결국, 끝까지 ‘죄는 죄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는 내 엄격함 덕분인지 ‘B’라는 애매한 점수를 받았다. 그것도 머리를 싸매고 좌충우돌하는 내 모습에 어쩌면 회심(?)의 여지가 남아 있다 라고 여기신 선생님의 배려 섞인 학점인 듯 싶다. 너무 영리하게 머리만 굴리지 말고, 또 너무 물에술탄듯 술에물탄듯도 말고, 지금처럼 머리카락 좨 뜯어가며, 찾아 든 이들의 마음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사제가 되기를, 그럴 수 있기를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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