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가톨릭사회교리: 새로운 사태 본문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회칙을 통해 정리하고 제시한 원리와 구체적 가르침은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벗어난 보편적 진리의 성격으로 그 이후 일련의 사회 회칙들이 반포될 수 있는 기본 틀을 마련하였고 가톨릭 사회 교리의 기본 골격을 이루었다. 회칙 ‘새로운 사태’는 가톨릭교회의 사회사상뿐 아니라 선진 여러 나라의 사회법 제정, 특히 노동 관계법과 관련 제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의식을 형성시키는 데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레오 교황이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노동이라는 주제를 다룬 근본 취지는 노동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하고 나아가서 공동선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동자의 발언권을 확보하고 신장하는 데에 있다.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 즉 인간 현존의 뚜렷한 표징이 바로 노동이다. 이 같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통념에 하나의 획기적인 변화가 몰아닥치는 데 그것은 바로 19세기의 산업 혁명과 그 결과로 빚어진 공장의 대량 생산 양식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생산 과정은 ‘임금 노동’이라는 사회 현상을 출현시키게 되었고, 바로 이 임금 노동 관계는 여러 면에서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 법적으로는 노사간의 자유로운 계약 관계로 볼 수 있는 임금 노동 관계가 실제로 그 후 지금까지도 부자연스러운 인간관계 또는 사회관계로 인식되고 통용되고 있다.
‘새로운 사태’는 우선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바탕을 정리, 요약한 후 이 분석의 토대 위에서 해결책이라고 제시된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모순을 파헤친 후 그 대안으로서 노동 문제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공익의 대표 기관으로서의 정부와 적임자인 교회가 함께 협력, 대처하는 길만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회칙은 흔히 사회 교리의 원칙들로 일컬어지고 있는 ‘인격성의 원리’를 18항과 30항에서, ‘연대성의 원리’는 3항과 23항에서, ‘보조성의 원리’는 26항과 38항에서, ‘연대성의 원리’는 35항과 39항에서 그 내용과 성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20항에서는 ‘쇄신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원리야말로 가장 정곡을 찌른 핵심이요, 모든 사회현상에 대한 적절한 강구책 마련에 가장 실용성 있는 조언이기도 하다.
1) 적정 임금
회칙은 32항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공정한 원칙 위에서 결정되어야 하며 그 적정선의 기준으로 가족 임금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이 살기 위한 필연 과정이라면 임금 수준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레오 13세 교황의 논리이다.
흔히 노동 경제학에서는 적정 임금의 결정 기제로 시장적 접근이나 제도적 접근을 학문상 합리적 결정 과정으로 보아 왔으나, 최근에 와서는 달라지고 있다. 즉 시장적 접근에서는 단순히 자유 시장 원리에 따라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임금 수준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현상을 타당한 조정 과정으로 설명하는데 이것이 지니는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7항에서는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논의하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과 인격의 고귀함은 전적으로 인간의 덕성이나 윤리성에 의존하는 것이지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경제적 소유의 많고 적음 등 우연적 속성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자유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된 임금 수준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32항에서 논의한다. 만일 노동자가 절박한 사정에 쫓겨 불리한 노동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면, 실제로 사용자는 그러한 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하여 불리한 조건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노동자의 자유의사를 실질적으로 무시한 것이며 노동자는 결국 불의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노동 계약의 바탕은 자연법의 정의가 기본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레오 교황의 설명이다.
회칙 14항에서는 노동자에게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가진 자는 힘이나 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7항과 28항에서도 ‘약자 보호 우선 원칙’을 분명히 하신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어, 부유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대책이 거의 없으므로 국가의 보호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염두 해 두어야 할 원칙은 ‘목적도 정당해야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단 역시 정당해야 한다.’는 절차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는 정의와 공동선이 요구하는 실천 윤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태’ 회칙에서는 임금 수준이 공정하게 결정되는 과정으로 노동관계 당사자들의 제도적 교섭을 지지하면서 임금 결정의 기본 줄거리가 자연법에 바탕을 둔 ‘가족 임금’이 기준이어야 한다는 준거의 틀을 제시함으로써, 이후의 계속된 사회 회칙들에서 더 구체적으로 적정 임금의 기준들이 제시되는 길을 열었다. 동시에 관계 당사자들의 교섭에 의한 임금 결정 과정에 반드시 참작하여야 할 원칙으로 32항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조성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나 임의적 개입에 대해 가톨릭 윤리에 따라 경계하는 내용이다.
2) 노동할 권리
레오 교황은 노동권을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기본 인권으로 인식하고 그 바탕으로 ‘인격성의 원리’를 30항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구체적 표현으로 안식일 계명을 들고 있으며, 35항에서는 ‘연대성의 원리’의 적용과 그 실천인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로는 단체 행동권을 들 수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당 하려면, 첫째, 파업의 이유가 정당하여야 하며, 둘째, 부당한 상황을 시정하고자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도 그 같은 수단의 사용이 상황 개선에 별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였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하며, 셋째, 비록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하더라도 부정한 행동이나 거짓된 태도는 절대 금물이다. 이에 따라 파업을 신중하고도 최종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는 교회의 시각은 공동선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그 준거의 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29항의 개요이다.
적절한 양의 작업 시간은 노동권 가운데 강조되어야 할 사안으로 31항에서 다루고 있다. 작업 중 제공해야 할 휴식 시간의 길이나 빈도는 작업의 성질, 작업장의 형편 그리고 노동자의 체력을 감안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노동의 강도나 계절 작업 역시 작업 시간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 요소이다. 한편 같은 31항에서 연소자와 부녀자의 보호를 특별히 배려하고 있다. 연소 노동자 보호에 대하여,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공장이나 작업장에 고용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한편 부녀자의 경우에는 여성의 자질을 북돋고 자녀를 양육하며 가족의 건강을 돌보고 가정의 화목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교황은 강조하고 있다. ‘인격성의 원리’에 입각한 정의가 이 모든 내용의 바탕이 되고 있다.
레오 교황은 35항의 앞 부분에서 노동 조직의 결성을, 사람이 이웃과 어울려 조직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인간 본성에 기초한 ‘연대성의 원리’를 실제로 적용하는 정당한 행동으로 본다. 같은 항의 뒷부분에서는 국가가 이 같은 자연권을 부인하거나 폐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 같은 천부의 권리는 존중되고 보호받아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국가이건 노동조합들 사회단체이건 다 같이 하나의 동일한 원리, 즉 ‘연대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장인 조직과 노동조합을 노동 조직 가운데 중심이 되는 조직으로 34항에서 다루고 있다. 산업 혁명으로 생산과 소비가 근본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시대에 들어와서는 장인 조직 대신에 시대에 알 맞는 노동자의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이 요청되고 있는데, 노동조합이 결성됨으로써 조합원인 노동자의 기본권익이 적절하게 보호될 수 있고, 구성원의 권익이 제대로 보호됨으로써 결국 공동선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34항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라는 것이다.
3) 국가의 역할
회칙 ‘새로운 사태’가 발표될 무렵 유럽 사회의 사상적 조류는 정치, 경제적으로 자유방임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자유주의 사조는 가급적 국가의 통제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던 당시의 시대 배경에 비추어 보아 회칙은 파격적이라 할 만큼 국가 공동체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동선의 원리’와 ‘보조성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 역할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는 개입할 권한만이 아니라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레오 교황은 입장을 밝힌다.
교황은,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전부 동원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이것의 원칙은 조화 속에 일치된 협력이어야 한다는 점을 22항에서 말하고 있고, 곧 이어 이 협력의 일익을 담당할 참된 국가의 자격 요건으로 자연법과 이성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국가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23항에서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구성원은 경제, 사회적 신분 차이에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똑같은 자격을 가지고 국가를 하나의 생명체로 만드는 기본 요소이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자들은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즉 전체와 부분은 어느 의미에서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일차적 의무는 분배 정의에 엄격한 실천이라는 내용을 24항에서 논의하고 있다. 그 다음인 25항에서는 공동선 증진에 이바지하는 다양성의 인정과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 사용이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노동자의 생산을 통해 소비가 가능해지며 국가는 부강해지고, 물적 재화의 사용이 인간 윤리 생활도 가능하게 하므로 노동자의 권익은 국가에 의해 적절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이와 같은 국가 목적 달성에는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 이를 26항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즉 국가는 개인이나 가정의 자유로운 행동을 그것이 공동선이나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가 통치의 원리고 공권력은 공동체의 전체와 부분을 똑같이 보호해야 하며 그 각 부분의 복리까지 골고루 배려해야 한다. 따라서 공동선이나 국민의 어느 한 계층의 권익이 위협받을 때 이의 시정을 위해 국가 공권력은 즉시 개입하여야 한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즉 일시적이고 조건부적 한계가 공권력 개입에 있어서의 한계이다.
부유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므로 국가의 도움이 절실하지 않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이 없으므로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며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27항의 논의 내용이다. 이어 28항에서는 국가 공권력이 사유 재산을 완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루고 있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차지하거나 또는 그릇된 평등사상을 구실 삼아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정의에도 어긋나며 공동선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국가 공권력은 그릇된 사상에 물들어 혼란과 폭력을 조장하거나,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기만과 약탈이 자행되는 위험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여야 한다.
4) 가정의 권위
흔히 사회 현상의 두 극단으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꼽는데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양극단 사이에 균형 잡힌 조화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가 ‘가정’이라는 사회 제도이다. 가정이란 구성원 수로 볼 때는 아주 작은 사회이지만 실제로 하나의 완전한 사회이며 국가나 그 밖의 어떤 사회보다 먼저 생겨난 사회이므로 가정은 완전한 별개의 독자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내용이 9항에서 자세히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적절하게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국가 공권력의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는 영구히 가장의 권리를 폐지할 수도 없고 대리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부모의 자녀 양육을 무시하고 그 대신 국가가 맡으려는 이념적 시도는 자연법에도 어긋나고 정의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10항의 논의이다.
5) 사유 재산
사유 재산 제도에 대한 논의는 가장 심도 있게 다루어진 사회, 경제 분야의 주제이다.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교황 레오 13세는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유 재산 제도를 단호히 배격하고 사유 재산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열거하고 있다. 즉 사유 재산의 근거는 실정법이 아니라 자연법에 있으며, 사유 재산권을 소유와 사용으로 나누어 이해함으로써 사유 재산을 관리하는 권한은 개인에게 있으나 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유 재산에 있어서 관리의 사적 기능과 사용의 공적 기능이 조화를 이룬 가르침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만일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이 관철된다면 가장 크게 피해를 입게 될 대상은 바로 노동자들임을 2항에서 지적하고 있다.
3항과 4항에서는 노동의 결과를 노동자가 재산이나 저축의 형태로 소유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며, 이를 부인하는 것이야말로 정당한 권리의 침해라는 설명으로 사유 재산권을 천부적 자연권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동의 결과를 노동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당연히 그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 역시 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이 5항과 6항의 논의이다. 즉 인간은 토지의 산출물만이 아니라 토지 그 자체까지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결과는 그 원인에 귀속해야 하지 제도적으로 제 3자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노동의 결실은 노동한 당사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공정하고 당연한 순리임을 7항과 8항에서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적정 임금, 노동조합, 국가 개입 등의 주제는 레오 교황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다룬 획기적 내용들이었다. 적정 임금과 노동조합이라는 주제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염두에 두고 사유 재산권은 다루어졌으며, 국가의 적극적 개입에 균형을 이루는 보완책으로 가정 권위라는 주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 자료출처: 예수회 성소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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