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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공부가 되다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공부가 되다

해피제제 2015. 1. 6. 09:28

 

성탄 전야미사를 마치고 동경대 유학생들과 조카(모자쓴 녀석) 그리고 구신부님과

 

 

조카녀석이 일본 방문을 해 왔다.

고3 수능이 끝나고 대학도 결정되어

집에서 나무늘보처럼 뒹글대다가 엄마의 독촉에 큰 걸음 내딪은 일본행이다.

 

2주간 녀석과 함께 하면서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음을 다시금 공부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2주간 방학에 맞춰 삼촌 편한(?) 시간에 찾아들었지만

관구 회의, 연말연시모임, 사도직에 녀석을 혼자 두게 되었을 때는

여기저기 아는 이들의 신세를 져야 했고

또 그게 그이들에게 빚을 지는 것같아 무겁게 남는다.

언젠가는 갚아야할 빚이라고 여기는 이 결벽증 가까운 중증병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니

이제 좀 신세를 지고 살아도 되겠고만 여전한 모습에 또 기운이 빠진다.

 

수도생활하면서 내 한 몸 잘 다독여서 게으름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심정으로 여전히 애를 썼는데

덜렁 혹(?)이 하나 따라 붙으니 녀석의 행동거지마저 내 습처럼 생각하곤 한다.

 

매일 여기저기 낯선 곳으로 내몰리는 일정에 몸이 많이 피곤할테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이의 늦은 기상에 자꾸 신경이 써진다.

10년, 매일같은 아침 기도와 미사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하는 아침식사에

울며겨자먹기로 몸에 새겨진 습관이 이제는 당연한 내 삶이지만

습이 되기까지의 그 고단한 훈련은 어느새 깡그리 잊고서

다음 일정에, 참다참다 큰 숨 몰아쉬고 방문을 두드렸을 때

이제 막 일어난 듯, 여전히 부시시한 모습을 마주할 때면

10년 수행 도로아미타불, 몇 번이나 '예수 마리아 아버지'를 기도했는지 모른다.

 

녀석의 피곤함을 알면서도 자꾸 이런 삐죽대는 내 모습에

'별반 달라지지 않았구나

여전히 엄격한 모습이구나

내가 수련장이라면 수련자 여럿 잡겠구나

이제 고3, 아직 어리잖니

낯선 환경에 이 녀석도 많이 긴장했을거야. 그러니 피곤이 몇 배일테고

벌써 몇번째 "삼촌 미안해요, 죄송해요"라는 조카애는 어떤 마음이겠니

그 아이 말처럼 알람을 맞추었어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면

일본에서의 일정이 얼마나 긴장과 피곤의 연속이었겠니' 등 등

 

이렇게저렇게 뾰족대는 마음과 그 마음을 다독이는 또 다른 마음이

지난 2주간 조카애와 함께하면서 가장 큰 공부가 되었다.

 

 

물론 좋았던 것도 많았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지만 늘 그렇듯 아픈 것들이 남듯이

기도할 때면 조카애의 행동과 그것을 보는 내 반응이 더 흥미로왔다.

천상 모든 것에서 배움을 멈출 수없는 나는

그래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이기를...

그 아이 사이에서의 크고작은 감정들이 또 나를 이렇게 일깨운다.

 

그러보고니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2주간 살아본 경험이 언제이던가....

조카애의 엄마(누님)와는 10살 이후로 명절에 한 두번 얼굴 본 게 다이고

작은 삼촌(동생)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거의 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지난 30년, 20년 누님과 동생 보다도 조카애와 함께한 이곳 동경에서 2주간은

아침부터 밤늦게 함께 다니고 옆방에 머물게 하면서

그래서인지 공동체 형제들이 '삼촌과 조카'라고 친밀한 관계를 들먹이지만

왠지 낯선 '가족체험' 드라마를 찍는 것 같아 자꾸 어색함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연말과 연시, 조카애를 통해 변하지 않은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내색없이 깊은 포옹으로 배웅한 것이 수행의 결과라면 결과다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삼촌 저 때문에 애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또 마음 속 한켠에서는 무엇인가 꿈틀대다가도

지난 2주간,

나란 인간이 수도원에서 고요히 머무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임을 알아채고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저기 자신과 함께했음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카애에게도 삼촌의 애 쓰는 모습들이 조금은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그런 느낌을 전했을 내 모습에 어린아이에게 괜한 미안함을 갖게 한 것이

녀석이 떠나간 지금도 이렇게 후회로 남아 있다.

 

좋은 공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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