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11시에 와서 6시에 떠나다 본문
11시 하네다공항에 도착한다는 조카를 맞이하기 위해 수도원을 나선 것이 오전 9시 5분,
시나가와에서 공항행 케이큐센을 타고오니 10시 30분도 못되어 공항에 도착했다.
잠시후 항공편을 살피니 10시 30분 아시아나 항공기가 착륙해서 '수화물 인도중'이다.
얼래! 8시50분 출발이랬는데 비행기가 2시간도 안걸렸단 말인가?
그렇게 기다리기를 30분,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조카애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중학교 3학년때 만난 후, 지금 고3이 되었으니 내가 얼굴을 못 알아 본 것인가?' 라는 생각에
혹여 안절부절 못하고 헤매고 있을 꼬마 아이를 찾아 본다.
그렇게저렇게 또 다시 10여분 경과,
이미 해당 항공편에 관한 정보는 전광판에서 사라지고 속속 다른 비행기 승객들이 출구에 가득하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메시지를 확인하니
8시 50분 비행기가 조금 늦어져 9시 20분에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와있다.
그래도 그렇지 11시 20분이면 도착했어야 했다.
게다가 10시 30분 이후의 다른 '아시아나 항공기'는 없다.
이미 마음이 바빠진 나는 안내데스크에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승객 김태랑, 기다리는 사람 김형욱, 2층 도착 안내데스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을
친절하게도 한국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로 차례로 내보낸다.
그렇게 방송을 하고 10분을 기다려도 조카애 비슷한 아이도 찾아올 생각을 않는다.
3층 출발 창구에 '아시아나 데스크'가 열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에 또 자리를 옮겨본다.
그런데 역시나, 출발데스크도 시간이 훨씬 지났기에 이미 철수한 상태다.
이런 난감한 경우가.....
이런 때는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이 맨 먼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수도원을 나설 때 수첩도 잊고 나왔다.
된장..된장..된장..
다행히 와이파이가 가능한 공항이라 아이패드를 열어 메시지창을 연결한다.
조카애가 환히 웃고 있는 얼굴의 화면을 열어
"너 지금 어디니? 삼촌 하네다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곧바로 녀석이 대답을 해 온다. "엑? 삼촌, 저 집인데요.” 한다.
‘…’
그리고 덧붙이기를
“삼촌, 오늘 저녁 8시 50분 비행기인데요?"
헐̴!
순간 속에서 불꽃이 화락 솟구쳤다가 녀석이 고3 아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게다가 '죄송해요. 저녁 비행기라고 말하지 않아서...'라는 녀석의 메시지에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랬구나. 삼촌은 11시 도착이라고 해서 오전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더 묻지 않고 습관적으로 생각한 것이니 네 잘못이 아니다'라며
녀석에게도 내게도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화낼 일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런데 탑승도 안했는데 '출발이 지연되어 9시 20분에 출발한다는 것'은 왠 이유니?" 라고 되묻는다.
그 메시지에 깜빡 속아넘어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는 별 생각을 다하며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여하튼 그렇게 거듭 '죄송하다'라는 녀석의 사죄에 더 할 말도 없고
'잘 도착하길 빈다'는 인사로
한바탕 소란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오늘 저녁 돌아갈 교통편을 생각하니 살짝 걱정이 밀려온다.
저녁 9시20분 서울에서 출발이면 2시간 비행으로 11시 20분 하네다 도착,
거기에서 짐찾고 입국수속을 밟게되면 또 10분에서 20분,
자동차를 운전할 일도 없으니 당연히 하네다에서부터 전철로 이동해야할터
전철을 3번 운이 좋게 갈아탈 수 있다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1시간 넘는다는 계산이다.
근데 그 시간까지 전철이 다니던가????
헛바람이 일면서, 이 녀석이 첫 만남부터 사람을 잡는구나 싶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고3 어린 학생이라는 것에 마음을 다독여본다.
한국 먼 곳에서, 이곳 내 사정을 알 수도 없고,
일본, 전혀 낯선 곳일지라도 의지할 삼촌이 있는 곳이니 저녁 늦은 시간도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직은 자기 사정이 급하고 타인을 생각할 만큼 훈련 받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 녀석에게 잘못을 탓할 수도, 어러저러하니 이래저래야하지 않겠니?라며
어른인체를 할 일도 아니다.
고3 학생에게 어떻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권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이렇게 하루 종일 공항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전망대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에 감탄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아이쇼핑도 즐기다가,
커피라테 달달하게 한 잔 하면서 녀석에게 전할말을 궁리해 본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사정과 함께 타인에까지 그 생각이 닿는 것'이지 않을까
늦은 밤이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편한 시간에 도착하는 조카를 기다리며
돌아갈 걱정 많은 나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라는 오래전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좀더 나와 관련된 '타인의 입장을 돌아볼 수 있게될 것'이다.
조카 녀석과의 작은 헤프닝은 또 이렇게 귀한 선물로 전해 진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 조카녀석과의 에피소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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