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제2라운드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제2라운드

해피제제 2015. 1. 26. 08:28

 

2라운드

 

지난 8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 동경의 죠치대학 학생들과 함께 참석했다.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통에 일본에서 신학 공부 중인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무려 2년하고 5개월만의 한국행이다. 그리고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 두었다.

 

공기마저 달달한 우리집

 

  아시아청년대회일정보다 일주일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짧은 동안의 귀국이라 여기저기 인사를 하러 다니는 것도 포기하고 2년간 사도직 실습을 하며 머물렀던 김포 바우네 공동체에서 친정어머니(?) 주시는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넉살 좋게 내놓으라며 천천히 적응기를 보냈다. 서너명이 살던 아파트 공동체라 음식 솜씨가 좋은 신부님이 부엌살림을 도맡아하셨는데 몇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부님의 손맛은 여전하다. 아니 여전한 것은 손맛뿐아니다. 유독 면종류를 좋아했던 것을 잊지 않으시고 이것저것 손수 챙겨주시니 친정집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810 공항으로 일본참가자들을 마중 나갔다. 일본 전국 교구에서 시간차를 두고 공항에 도착하기에 오전에 일찍 도착한 이들은 피곤한 기색이다. 중에는 얼굴을 알고 있는 죠치대학의 학생들도 있었고 다른 교구에서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안면이 있는 친구들은 일본말을 하는 한국인이라며 눈을 반짝이고 서투른 한국말 표현을 물어오거나, 지루한 기다림에 공항 여기저기 안내를 부탁한다. 나라에서인지 한껏 자신만만해진 나는 부탁해오는 것들은 물론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얼굴을 들이밀며 오지랖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청년대회 참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전 솔뫼성지에서의 청년대회와 죠치대학 학생들과의 이틀간의 서울 일정에서도 여지없이 나의 오지랖은 멈출지 몰랐다. 22개국의 젊은이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겨우 살아남기 위한 서발이벌 수준의 영어를 사용하고, 일본참가자의 사람으로서는 일본어로 대화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한국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꽤나 유익한 체험이다. 필리핀과 일본참가자들이 탔던 버스에서는 한국말을 영어로 통역해달랄 정도였으니 두려움없이 사용했던 영어가 한국인 봉사자들에게는 꽤나 유창하게 들렸나보다. 조를 나누어 함께했던 그룹 안에서도 이것저것 물설고 낯선 곳에서 거침없는 행보는 조원들의 기대어린 눈빛을 몸에 받았다. 10 남짓의 조원들은 커피한 잔을 하러 때도 나를 옆에 끼고간다. 행사장으로 이동할 때도 마치 새끼오리들이 어미오리를 따르듯이 뒤만 졸졸 따른다. 우리 그룹의 막내였던 18 미얀마 참가자는 대회내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붙어 있는다. 그래서인지 내가 찍힌 사진 옆에는 항상 아가씨가 등장하면서 약간의 소동이 나기도 했다. 수도공동체 형제들에게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해명아닌 해명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수도성직자들이 머물렀던 건물에서는 세탁기 쓰는 , 정수기 위치, 매일의 일정 체크, 심지어 여행슈트케이스가 잠겼을 때는 드라이버를 빌리는 일까지 대행해 정도였고, 대회 일정이 끝난 죠치대학 학생참가자들과의 이틀간의 성찰일정에서도 나는 운전수로서, 명동성당을 비롯한 안내인으로서, 기념품을 사러 때는 중간에서 흥정을 도와야했다. 나라에 돌아오니 이렇게 쓰임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일본 공동체에 돌아왔을 아시아청년대회 함께 참석했던 수사님들이 입을 모아 그런다. “한국에서 さん() 모습이 전혀 달랐다.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라고 한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공기마저 달달하던 한국에서는 애를 필요가 없었다. 애를 써서 들을 필요도 없었고, 애를 써서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몸에 잔뜩 힘을 주어 살지 않았도 되었고 그래서 저녁이면 어깨가 아프고 파김치가 되어서도 잠을 이룰때까지 밤을 묵주기도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동료 수사님들의 그러한 소감에 무엇이 달랐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작아진 세계 이유다. 모든 것에 열려있었던 한국에서의 자연스러웠던 삶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학교, , 도서관을 오가는 행동반경이 제한된 세계에서 살았다. 버스와 전철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에 신경을 쓰며 살아야하니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쉽게 피로해진다. 그러다보니 쳇바퀴 굴러가듯 익숙한 장소만을 오가게 것이다.

 

  사람들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강의를 듣는 적은 수의 학생들이 일본 예수회원들을 제외하고 2 5개월 동안의 인간관계의 전부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단지 상대방의 이름과 사람이 하고 있는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이의 인생 전체를 나누어 받는다는 뜻에서의 사귐이라면, 그때는 참으로 고만고만한 관계 맺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작아진 세계에서도 좁아 터진 마음 더욱 그렇다. 그해 청년대회에서 절절히 경험한 것이 마음의 크기였다. 무엇 하나 쉽지 않았던 일본 생활에서와는 달리 나라에 발을 두니 당연히 모든 것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선함, 부드러움, 따듯함, 배려등을 쉬이 보일 있었다. 전철에서 사람과 대화를 하면 폐를 끼친다 이유로 동료 수사님과 얼굴을 마주하고도 학교길 시간을 서로 외면한 곳에 시선을 두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인형처럼 생기없는 표정의 모습이나, 인터넷 페이스북에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올렸을 사람 사람 허락을 구했느냐는 물음에 어이가 없어져 후에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사진만 올리다가 결국 갑갑함에 오랜 글쓰기 취미생활도 접게 되었다. 그러면서 폐를 끼치지 않는 최고의 미덕인 일본생활에서 그동안 폐를 끼치며 사는 데에 익숙한 내가, 무엇 하나 조심조심 살지 않으면 안되는 숨막히는 사회구조에서 이것이 폐가 될까 혹은 되지 않을까?’라며 스스로에게 자기검열을 하게 것이다.

 

  여하튼 나라에 돌아오니 그런 것이 없어져서 좋았다. 아직은 답답해 보이는 한국이라서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너무 조심조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보다 쉽게 말을 걸고, 인사를 건네고, 웃고,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통용이 되는 곳이다. 서로를 껴안아 수도 있고 마디도 건넬 때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전철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통화 소리가 너무 당연한 곳이다. 친구끼리 무엇이 그리 재미난지 재잘대는 목소리도 흔한 풍경이다. 처음 일본 수사님들과 재잘대던 나도 쭈삣쭈삣 대답하던 수사님들의 조심스러움에 전염되어 어느덧 삭막한 풍경의 일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의 본래 모습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듣게 되면서 다시 일본에 돌아와 결심한 것이 있다. ‘너무 조심조심 살지 말자’, ‘하느님의 주신 선물; 선함, 부드러움, 따듯함, 배려, 연민 등등을 드러내며 살자’, 그러한 것들을 드러낼 살짝만 용기를 내자

 

  여름의 일이 있고 가을 학기 어느 수업 시작 , 소리로 모두를 향해 인사를 하며 강의실로 들어섰더니 학부 학생들이 눈을 동그렇게 뜬다. 게다가 먼저 오셔서 강의를 준비 하시던 교수신부님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며 뭔가 변했네라는 눈빛이다. 수도 공동체에서도 식탁에서 말이 많아 졌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한국에서 청년대회를 함께 참석했던 학생들을 교정 가운데서 만나면 한국에서처럼 껴안아 주기도 하고, 쉽게 자판기 커피 잔을 대접하며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처음 보는 이에게도 친구의 친구라면 인사를 건네며 아는 체를 하니 상대도 별난듯이 응대해 온다. 그러면서 그이들 눈에 나는 어차피 영원히 이방인이니 너무 조심조심 살지 않으려 한다. 용기를 내어 내게 주신 선함, 따듯한, 부드러움 등등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들 드러내 보이며 것이다. ‘2라운드의 일본생활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예수회후원회 소식지 2015년 2월호 수정 전 전문

 

 

'마음에게 말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1) 2015.02.06
11시에 와서 6시에 떠나다  (0) 2015.01.28
공부가 되다  (4) 2015.01.06
갈망하기를 멈춘다면....  (2) 2014.12.29
복음화란 무엇인가  (0) 2014.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