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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그놈의 '정' 때문에 본문

매일의 양식

그놈의 '정' 때문에

해피제제 2011. 10. 20. 06:41
1독서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복음말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단상

며칠 전 태국 이주노동자 세 명이 이웃살이를 방문했다.
한국 온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간간이 말하는 것을 알아 듣기는 하지만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 상태다.
해서 태국대사관 노무과에 전화해서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역을 부탁했다.

1년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고용주가 재계약을 요청해 왔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월급이 적고 일이 고되 다른 공장으로 이직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고용주는 그렇다면 당장 그만 두라며 계약만료일 2주 정도를 앞두고 고용해지를 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계약일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원의를 밝혔고
그래서 1년간 일한 퇴직금을 수령하려고 한다.

노동부 산하 관계기관인 김포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그렇지만 전화를 통해 고용주와 상담을 했지만 원활히 중재를 이룰 수 없었나 보다
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세 명의 노동자들은 이웃살이를 찾았고
도통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웃살이와 관계를 맺고 있던 대사관에서는 노무과 담당자에게 이번 상담을 넘기는 게 좋겠다며
자신들이 이 건을 처리하겠다고 한다.

대사관을 연결해 주면서도 마음 한 켠이 복잡한 것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대사관에 떠 넘긴 것 같아 괜히 책임을 방기한 듯하다.
그래서 힘 없이 떠나가는 그이들이 뒷 모습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이번에는 4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그래서 한국말이 좀 더 나은 태국인 형님 한 명을 대동하고 다시 이웃살이를 찾아 왔다.
'대사관과는 어떻게 됐냐'는 질문에 고용주가 대뜸 화를 내며 완강함이 너무 심해서
대사관 노무과의 중재도 실패를 했단다. 그래서 지지부진
마음이 급해진 노동자들은 다시금 이웃살이를 찾았다.

전에 그 미안함이 그대로 남아있던 차에 
이웃살이 봉사자 돈보스코의 통역을 통해 그이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듣고
그이들의 공장으로 고용주를 직접 찾아갔다. 물론 새가슴 덕분에 떨리는 마음은 여전하다.

아니나 다를까!
고용주는 문전박대, 작업중이니 공장은 얼씬도 말라며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작업 끝날때까지 기다리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1시간을 더 기다렸다.

어둠이 내리고 작업장도 정리가 될 쯤에 퇴근을 서두르는 고용주를 붙잡고 이야기를 듣는다.
고용주도 할 말이 많다.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그이의 사정을 듣고 간간이 맞장구를 친다.
서운한 것이 많다. 그동안 먹을 거, 입을 것 등 등 집에 있는 것들을 싸들고 와서
월급 한 번 미루어 본 적이 없이 이들을 '가족처럼' 대했건만
세 명이 동시에 공장을 옮기겠다고 하니 단단히 뿔이 났다.

역시 그놈의 정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은 민족으로 사람을 대할 때 허투로 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웃살이에서 바라보는 사태의 원인은 늘 이런 '가족처럼'이 문제일 때가 많다.
고용주와 동료들은 '가족처럼' 대했건만 이주노동자들은 그것이 당연해 보이다.
그리고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이들이 낯선 타국에서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류로 된 '근로계약서' 한 장 뿐이다.
거기에 그이들의 모든 권리가 기록되어 있다.

아침 8시 30분에서 저녁 5시 30분까지면 꼭 그만큼만 일한다.
연장근로가 있다면 또 그만큼 일하고 짜투리 시간까지 초과 근무 수당을 받아야 한다.
고용주는 화가나고 펄쩍 뛸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모양이냐'며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한 정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야단한다.  

점심식사 시간이 계약서에는 1시간으로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20-30분 밥 먹고 다시 일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당연히 믿을 게 계약서 뿐인 이주노동자들은 항의를 하거나 마음 속에 불만을 키운다.

주 5일 근무제로 바뀌었는데 그 정보를 알아온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서류를 내민다.
그렇지만 영세 공장에서 주5일 딱 하고 지키며 공장을 돌린다는 게 가능한가!
여기 믿을 게 근로기준법이요 계약서 뿐인 노동자들은 또 가슴에 불만만 쌓여 간다.

고용주의 하소연도 이해가 가면서도 그놈의 정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빈번히 겪는다.
이주노동자들은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한다.
'근로계약서'가 그렇다면 그것은 '공'적으로 고용주와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딱 그만큼 일하고 자신의 노동 댓가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온통 '정'의 문화 안에 살던 고용주는 이들의 정확한 행동은 '되먹지 못한'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고 서운함이 많다.

고용주는 노동자를 자신이 돈을 들여 데려 와서 또 인간적이게
그이들에게 '가족처럼' 대했듯이 이주노동자들 역시 자신을 '가족처럼' 대하길 원한다.
그렇지만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운 타국에서 아무리 고용주가 '가족처럼' 대해 준단들
결국 서로의 입장과 그이들의 문화를 받아 들이지 못하면 늘 이렇게 상처만 남는다.

이주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의 '정'도 아니고 '가족처럼'도 아니다.
바로 말도 못하고 바보 취급 받는 자신들을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근로계약서의 조건들'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근로 조건이 지켜지지 않거나 부당하다고 느끼게 되면
고용주가 억울해 하는 '정'도 과감히 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이들 역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이다.

'천주교회에서 왜 이런 일을 하고 또 왜 이 사람들 편만 드는 거냐'며
역정을 쏟아내는 고용주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조용히 듣고 그이의 분노를 이해하고 그이가 답을 찾기를 바란다.

늘 공장을 찾을 때면 이와 같이 대동소이한 반응들이다.
공장에 함께 가주었으면 하는 친구들 앞에서 가볍게 한숨이 나오는 것은
'오늘은 또 얼마나 욕을 먹겠는가' 하는 은근한 걱정이다.
그럴 때면 마음에 십자 성호를 긋고 자연스레 수난 받으시는 예수님을 그려보다.
온갖 욕과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온유'하게 걸으시는 그 모습이 또 나를 지켜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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