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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꿈의 증거 본문

매일의 양식

꿈의 증거

해피제제 2011. 10. 29. 07:01
1독서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말씀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단상

'당신은 이제부터 저의 적입니다.'

박원순씨의 열렬한 지지자 김제동씨의 말이란다.
어제까지는 당신의 친구이자 젊은 멘토였지만 오늘부터는 당신의 감시자를 자청한다.
 
참으로 대단한 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이의 살아가는 모습, 타인을 대하는 자세, 못 가진 이들을 향한 마음 씀씀이 등 등
어느 것 하나 존경하지 않을 게 없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책 인세 전부를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선거 전, 치열한 비방이 있던 터라 소문이 무성한 곳은 아예 발길도 끊는 우리네 정서에서
그이는 보란듯이 아름다운재단을 찾고 벗이 어려움에 처할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함께 해 준다.
아마 이런 친구라면 죽어도 내 가족, 한 세상을  내 맡겨도 후회스럽지 않으리라.

그런 그이가 이제는 자신이 존경하고 지지하던 박원순 시장을 '적'이라고 규정했다.
'적'은 '적'인데 그 마음은 '원칙이 통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향한 그 염원에
박원순 시장이 처음 그 마음 변치 않기를 '감시자'의 자리에서 선을 긋고 대하겠단다.
'진정한 친구'의 표양이란 바로 이런 거라며
높은 자리처럼 보이는 서울시장 자리가 전혀 군림하는 자리가 될 수 없으며
가장 낮은 자로서 시민들을 섬기고 진심을 다하여 대해 주시라는 사랑을 담은 조언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오랜 세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벗들과 더불어 꿈을 꾸었지만
이제는 '정치'라는 말이 '꿈이나 희망'과는 반대의 의미로 통하는 진흙탕 속에서 그 꿈을 꾸어야 한다.
많은 선한 이들이 박원순 시장보다 이전에 앞서 그런 '공동선'을 위한 꿈을 꾸었지만
처음 마음처럼 살지 못하고 권력에 휩쓸려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 권력을 탐하거나, 또는 허망한 모습으로 죽음으로 내몰렸다.

오늘 복음말씀에서처럼 '윗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이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혹은 존경을 담아 윗자리에 앉은 이를 바라보아 준다면
대접을 받는 이도 처음에는 몸둘 바를 모르다가
그것에 관성이 더해져 몇년간 그런 시선을 받게 되면
처음의 부끄럽고 어색한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당연히 윗자리가 자기 자리인양 행세한다.
그렇게 권력을 누리다가 결국 그 권력에 먹힌 사람은 
그 윗자리에서 내려올 때에 자기 자신도 함께 사라지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고 정도를 벗어나고 아닌 것을 행하게 된다.

반면에 처음처럼 그 조심하는 마음, 어색해 하는 모습,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매일 일기를 쓰듯이 조용히 앉아 성찰을 하고 마음에 새긴다면
어려움을 함께 해준 지지자들과 주위의 멘토들은 물론이요
반대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그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한다면
그래서 끝까지 그 마음을 지킨다면 그이가 윗자리에서 내려올 때
그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모두가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를 기억할 것이다.
그이의 발걸음 하나 하나가 이전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더 존경의 시선을 둘 것이다.
비록 다시금 돌아온 아랫자리지만 아무도 그이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리라.

혹여 예언자들처럼, 예수님처럼, 마틴루터킹 목사처럼, 노무현 대통령처럼 죽게 될 지라도
세상의 시선은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지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실패가 아님을 더 알게 된다.
비록 그이들의 죽음으로 꿈은 꺾이고 희망은 사라진 것 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꿈 한 번 꿀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음을, 그런 꿈을 꾼 사람이 앞서 있었음을 기억하게 되리라.
세상은 그이들을 죽였지만 그 꿈들을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어 받는 이들은 늘 그이들을 기억하고 또 새롭게 꿈을 꾼다.
비록 죽음이 그 끝에 버티고 서 있더라도....

바로 예수님이 그 꿈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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