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이웃살이의 꿈 본문

매일의 양식

이웃살이의 꿈

해피제제 2011. 10. 31. 06:23
1독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복음말씀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단상

주일 내가 상담한 이주노동자들이 스물 넷이다.
지난 주에는 스무명이더니 오늘은 넷이 더 늘었다.
그래서인지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가듯 그이들이 떠나고 나면 혼이 빠진다.
그래도 마구마구 더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고는 못살 것 같은 이 마음은
아마도 '사랑' 그 이름의 다름 아닌가....

이웃살이에서도 간간이 맛 볼 수 있는 기쁨이었는데
업무 분담에서 이주노동자 중 태국쪽은 소장님이
그리고 필리핀쪽은 동기 수사님의 차지다.
내 역할은 쉼터, 센터 관리 등 행정적인 일이 주가 되다 보니
노동부 등 외부 출장이 있을 때면 자동차 운전 기사 역할도 해야 하고
행사가 열리면 짐꾼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스텝들 보다 이주노동자들만의 접촉점이 덜하다.
아니다. 그래도 코딱지만한 사무실이다보니 언제든 손을 보태야 할 처지에
상담은 모든 스텝들의 필수 사항이다.
 
6년째 이웃살이에서 일하고 있던 소장님께는 태국으로의 안식년이 주어졌다.
새로 신부님이 오시면서 그동안 한 번도 쉼의 시간은 물론 자기 계발의 시간도 없었던 터에
연구비까지 지원해 드리면서 한 3개월 동안 쉬도록 권했다.
그러자 소장님은 그 동안 태국 사람들을 상담해 온 것도 있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해야 할 터에 잘 되었다 싶어 태국으로 안식년을 떠났다.
가끔씩 메일을 근황을 알려 오는데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태국말도 배우고
한국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듯 하다.

덕분에 센터에서 소장님이 담당했던 태국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은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그러면서 내 집 처럼 찾아 드는 순박한 이주노동자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기쁨이다.
한 분 한 분 사연이 없는 이들이 없다. 그럼에도 낯선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답답함에도
하루하루 긴장의 상황 아래에서 그이들은 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 오늘도 열심이다.

다들 배울 기회가 없었던 시골 그것도 깡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그이들이 사는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나라를 찾은 것이다.
한국 문화라는 것이 다분히 개인적이고,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데가 많아서
그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 등 수많은 재촉의 말들이요
그 다음은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온갖 험악한 욕설들이다.
물론 합리적인 고용주도 많지만 나쁜 소문들이 훨씬 더 빨리 퍼진다고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두려운, 부당한, 권리가 짓밟힌 사건들이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

좋은 일로는 상담센터를 찾을 일이 별로 없다.
하느님에게서 은총을 받으면 그냥 그 은총을 누리며 살면 된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권리 등을 침해 받았을 때는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기에
내가 상담한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여전히 그 숫자만큼 부당하게 대우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포에만 이웃살이 같은 센터가 7개나 생겼으니 그만큼 관심도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태국말 통역 봉사자가 집안에 일이 생겨 이웃살이 봉사를 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먼 곳에서 전화를 주면서 오늘은 저번 주보다 넷이 더 늘어 24명이 왔다고 하니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그래도 수사님이 친절하게 잘 해 주나 보네'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에 왔던 친구들이 두 서넛씩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면
'그런가' 싶기도 하고 봉사자의 말에 머쓱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태국 친구들 역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데 꼬리를 달고 또 찾아 주었으니
그래도 환대를 하는 느낌을 주었다니 내가 다 감사할 일이다.

별로 주는 것도 없이 한 없이 되 받는 체험이 이와 같으니 이 일 해 나갈 수 있나 보다.
태국에 가 있는 이웃살이 소장님이 그렇고
다른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을 전해 받는다.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웃음이 되고 사람 사는 곳이 되어 간다면
내가 하는 이 작은 일, 이웃살이의 꿈, 이웃 사이에서 함께 사는 것은
이미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 보인다.

'매일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3) 2011.11.02
마음을 따르는 삶  (5) 2011.11.01
선한 사람들  (2) 2011.10.30
꿈의 증거  (2) 2011.10.29
그리움의 몸짓  (0) 201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