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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시지는...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내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시지는...

해피제제 2011. 6. 30. 14:10

 
우습게 생긴 넘, 무지하게 못생긴 넘, 이웃살이 코세랍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 창세 22,2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이 어떤 의미인가!

이사악은 늘그막, 세수 일백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다.
하가르에게서 여든 여섯에 얻은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그이는 서자다.
본처인 사라와 이집트 하녀 출신 하가르의 갈등에 온 집안이 휘청였듯이
유다 전통에서 적통과 장자의 의미는 남다르다.
조선시대의 장자의 의미에 더해, 신의 섭리와 축복까지 이어진 자식이다.
그런 이사악을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다.
‘너의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쳐라’

그런데 또 그것을 허락한(?) 아브라함의 속내는 무엇인가...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감히 측정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그냥 저절로 쌓아진 것이 아니다.
 
그가 일흔 다섯, 자기의 고향 하란과 친척과 아버지를 떠나
불확실함이 가득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것마저도 놓을 수 있게 만드는’
그게 비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생명일지라도
그 아들마저도 손에서 놓게 하는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어떤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브라함의 하느님에 대한 어떤 체험’이
이 둘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신뢰’의 관계로
그리고 삶 속 깊이 새겨진 ‘믿음’으로 열매 맺어졌다 말한다.
 
덧붙여,
사흘 동안의 모리야 산으로의 여정 중에 아브라함은 몇 번이고 물었으리라.
번제물에 쓰일 장작을 패고, 아들의 손을 잡고 산길을 오르면서,
그리고 ‘번제물에 쓰일 양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 아들에게 힘겹게 대꾸하면서,
그런 아이를 손수 묶고 칼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까지도 아브라함은 간청했으리라.
 
‘야훼 하느님께서 내 가슴을 찢어 놓지는 않으시리라.
그분께서 내 눈에서 피 눈물 흐르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시리라’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시는 하느님,
언뜻 올라오는 것은
만약 그것이 내 전부처럼 느껴지는 지금의 ‘수도생활’이라면
나는 아브라함처럼 내 삶의 터전을,
내 사랑하는 이사악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당신이 거저 주신 것, 당신이 거두어 가신다면...’

 

* '매일의 양식'을 다른 곳에 옮겨쓰면서 내용을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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