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유시찬 신부님의 나눔 본문
‘새삼스레 수도생활을 더듬으며’
술 생각이 나길래 옷장을 뒤졌더니 마침 누가 주고간 와인 한 병이 나타났습니다. 맛있었습니다. 잘 마시곤 내친 김에 컵라면까지 하나 끓여 먹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잠도 안 자고 앉아 청승을 떨고 있습니다. 밤이 한참 깊었는데 말입니다.
성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경 새해가 어떻게 오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제 주위 상황이 황량합니다. 몸 가릴 것 하나 없는 넓은 들판에 옷깃을 여미며 서서 강한 바람을 피하려고 힘들어하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서 이는 바람과 한기가 제 온몸을 휘둘며 힘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옷을 벗으려는 이들을 붙들고 때론 협박도 하고 때론 달래도 보건만 아무런 힘도 없는 제 자신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깊은 무력감이 날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새롭게 수도생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수도생활이란 게 뭔가?
이렇게 아픔을 토하고 있을 때 다가왔던 건 그분의 따뜻하고도 밝고 힘있는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제 온몸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건 총체적으로 단 하나, ‘자유’였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바람처럼 그 모든 것을 빠져 나가면서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뭔가 자그마한 답을 얻은 듯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물질이 나쁘다거나 피해야 할 것이 아녔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물질에 사로잡히는 게 싫어 ‘청빈’서약을 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만큼, 차고 넘치도록 물질을 향유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필요한 만큼 말입니다.
사람이 나쁘거나 싫은 게 아녔습니다. 그저 사람이 대단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람에게 매이는 게 싫어 ‘정결’서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마음을 다하고 온힘을 다해 사람들을 끔찍이 사랑할 것입니다. 홀로 떨어져 고결하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견해를 주장하고 자기 뜻을 펼치는 게 나쁘거나 해로운 게 아녔습니다. 그저 책임지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떳떳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견해나 주장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과 해악이 싫어 ‘순명’서원을 했습니다. 따라서 윗사람(장상)의 지시가 늘 참된 하느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윗사람이 참으로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어 전해주고 명하기 때문에 순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윗사람도 내가 잘못을 범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읽고 엉터리 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윗사람도 잘못을 범하고 오류에 떨어질 수 있다는 그 사실때문에 오히려 윗사람의 명령에 기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순복합니다. 왜냐하면 내 견해에도 사로잡히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주장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만에 빠져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함에도 어떤 기준이 있지 않으면 내 견해와 네 견해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긴장과 갈등을 빚어낼 것입니다. 그래서 일응의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간주하며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 주장 내 뜻에만 사로잡히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발판이 필요한 입니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그 발판이 되는 것이, 바로 장상의 뜻입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삼대서원을 발했다고 해서 우리의 수도생활이 완전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삼대서원의 본래의 정신을 함양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자유’를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분의 자유의 폭과 깊이와 넓이와 힘에 이르기까지.
정말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잘못된 해악을 끼치는 일 없이. 다른 이들의 비난에 위축되지 않고, 헛된 명예나 권력에 한눈을 팔지 않고, 윤동주 시인이 읊조렸던 것처럼 죽어가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고 좋습니다. 자기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지.
옷을 벗고 떠나는 이도, 남아 있는 이도, 다 아름답고 좋습니다. 어느 길을 택했든 기뻐하고 힘을 낼 일입니다. 슬퍼하고 좌절하고 한을 품지 않았으면 합니다.
온갖 실의와 좌절과 회의와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그분께서 오셔서 말씀 건네십니다.
‘평안하냐?’
이 한 마디 말 속에 담겨 있는 따뜻함과 위로와 힘과 희망이 손끝에 만져지십니까.
* 예수회 성소실 카페에 올라온 글을 퍼 왔습니다.
누군가 수도회를 떠난 듯...역시 기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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