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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따뜻함과 부드러움 품고 사는 한 해 되시길... 본문

매일의 양식

따뜻함과 부드러움 품고 사는 한 해 되시길...

해피제제 2012. 1. 1. 06:30
1독서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독서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복음말씀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단상

오랜만에 4시간 동안의 장릉 둘레길 산책으로 따순 물에 샤워을 하니 노곤함이 밀려 오더니
한 해를 즐겨 보내며 공동체 신부님과 한 잔 곁들인 포도주에 이야기 내내 하품이다.
그러더니 설거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이부자리를 펴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깨어보니 이 아침이다.
무려 9시간의 곤한 잠,
세상에 이럴 때도 다 있구나!

5시면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나니 문자 메시지들이 여기저기에서 와있다.
저마다 '복'을 빌어주는 새해 인사다. 고마운 사람들...
나는 새해 인사 보내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 주는 이들이 있다.

그이들에게 늘 고마움의 빚을 지고 산다.
정초 새해부터 빚쟁이가 되었으니 올 한해도 얼마나 빚을 지고 살게 될지...
반갑고 고맙고 기쁜 사람들
'그대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역시나 컴퓨터를 켜니 또 여기저기서 복을 빌어 주는 메일이 하나 가득,
게다가 케냐에서 3수련 마치고 돌아오시게 되었다는 공동체 신부님의 메일과
또 3월 원고, 20일까지 안 주면 국물도 없다는 선배 신부님의 협박까지 
내가 새해 오는 것도 잊고 곤하게 자는 동안  
이들은 가족과 벗들에게 지는 해에 아쉬움을 보내고 오는 해에 희망을 담는다.
나는 그짓도 잊고 잠만 자고 있었으니,
그노무 술이 웬수지.....에라이, 잠퉁이

다른 소식이 있는지 이것저것 살피다가 또 왈칵 올라오는 것이 있으니
고인이 되신 김근태님을 깊게 추모하는 길게 늘어진 추모객들의 발길이 담긴 사진과
오래전 그분의 책 서문을 쓰셨던 역시 고인이 되신 박완서님의 글이다.
조심히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가면서 그분들의 만남이 이랬을까 가슴 짠함이 올라오다가
올 한 해는 이 글 마음에 두고 살자 싶어 고마운 벗들에게도 들려 드린다.

다음은 박완서씨가 쓴 발문 전문이다.


나는 고문자도 치가 떨렸지만 김근태도 사실은 무서웠습니다.
용기란 냉엄이 아니라 따뜻함입니다.
김근태씨를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먼 발치에서 본 적도 없습니다.
그의 이름을 언제부터 알았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된 것은 그가 폭로한 고문사실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마 1980년대 중반고개를 알 수 없는 중압감에 눌려 허덕거리며 넘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끔찍한 고문 내용은 신문에도 났고
더 상세한 건 유인물을 통해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같은 인두겁을 쓴 사람끼리 그럴 수가 있을까?
그가 외친 그대로, 정말이지 인간성에 대한 절망으로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 후 때때로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만일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곤 했는데,
나라면 고문도구만 보고도 아니 고문자의 얼굴만 보고도 그 앞에 구더기처럼 기면서
그가 원하는 모든 사실과 모든 이름을 술술술 말해버릴 게 확실했습니다.
그러니 나 같은 건 운동하는 사람하고는 이름도 모르고 지내는 게 수였습니다.
무슨 엉뚱한 화를 미칠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가 소원이라 해도 나로서는 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짐짓 눈감고 귀먹음으로써 획득한 그 무렵의 나의 안일엔,
그런 뜻으로 김근태란 이름 자체가 고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근태는 다시 감옥에 있고,
그를 고문한 기술자는 어디선가 백주의 대로를 활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잔혹한 고문자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게
무섭고도 치욕스러운 것 또한 1990년대의 고문입니다.

나는 고문자도 치가 떨렸지만 김근태도 사실은 무서웠습니다.
도대체 어느 만큼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기에
그런 무자비한 형벌을 견디고도 살아 남아 온전한 정신과 기억력으로
그 짐승 같은 시간에 일어난 하늘 무서운 일을 낱낱이 생생하게 증언할 수가 있었을까.
그럴 수 있었던 그가 외경스러운 나머지
고문자 못지않게 독한 데가 있는 사람이려니 여겼습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그의 부인 인재근씨를 만나보고
그가 옥중에서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기만 아들딸 있는 것처럼 알뜰살뜰하고도 살갑고 따뜻한 그의 부정에
절로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났습니다.
독할지도 모른다는 오해도 풀렸거니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어서 외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그와
친해진 것 같은 묘한 안도감까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용기란 냉엄이 아니라 따뜻함이라는 걸,
강함이란 날카로움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라는 걸 확인한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했구요.
아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 또한 여실해서 대견하고,
그밖에 가족, 친척, 친구 등 애정 넘치는 분들이 그를 그답게 받쳐주고 있다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빨래를 하다보면' 같은 글을 읽으면서는
괜찮은 남자치고 여자 무시하는 남자 못 봤다는 평소의 내 생각이 틀림없었다고
쾌재를 부르기도 했답니다.
김근태는 투사다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김근태는 괜찮은 남자다라고 말해줘도 조금도 실례가 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그의 글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자유의 몸이 될 그 괜찮은 남자에게
이 책의 발간이 이중의 기쁨이 되리라 믿으며 축하의 뜻을 전합니다.

1992년 6월 5일 박완서 

지금은 세상에서 자유의 몸이 되신 두 분 영혼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이땅에 남은 이들에게도 그분들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빌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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