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대쪽같은 선비 본문
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복음말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단상
형제들끼리 식탁 대화를 이어가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교수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와 같은 대학의 교수와 총장들은 그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때에 정치에 쓴 소리도 해가며 어른의 지혜와 지성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후학들을 지도하기에 멘토의 역할이 가능하다.
그리고 절대로 정치와는 거리를 두며 비판적인 자세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네 학계를 현실을 보고있자면 전통 있는 대학들의 학자들이 많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 명예가 무엇인지, 권력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이름난 교수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정치에 입문을 하여 그 끝이 좋았던 예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학자로서 존경을 받다가 어찌어찌하여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그러다가 이런저런 구설수와 실정에 허망한 결말이 마치 무슨 수순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다.
그렇게해서 묵묵히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들까지 싸잡아서 '교수짓'으로 불명예스럽게 한다.
지식과 지혜를 빌려 주는 것은 좋겠지만 '당신 아니면 안되겠다'는 꼼수에
그 허망한 명예욕에 평생 쌓아왔던 학자적인 자세를 무너트리니
그 이름이 필요할 때는 간, 쓸개 다 내줄 것 같이 아양을 떨다가
자기 편임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깎아내리는 현실의 정치에서
그 순진하신 분들이 뒤끝이 참으로 안좋게 끝나는 것이 한 편의 개콘을 보는 것 같다.
신부님과 수사님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가
혼잣말로 "우리도 '대쪽같은 선비'가 필요하지..." 하고 중얼거렸더니
막거리를 한사발 들이킨 동기수사님이 꿈벅꿈벅 왕방울 같은 눈을 화들짝 치켜뜨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형욱이가 이제 저런 말도 할 줄 안다'며 난리를 피운다.
'대쪽같은 선비'를 '개조까튼 새끼'로 잘못 알아들었단다.
그 말에 덩달아 어이가 없어 '어떻게 "대쪽같은 선비"를 그렇게 알아 들을 수 있냐'며
어이상실, 난리도 아닌 말에 배를 잡고 한참이나 웃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우리 셋 대화에서 허망하고, 분하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대할 때면
서로들 '대쪽같은 선비'라고 외치며 화를 풀곤 한다.
'대쪽같은 선비' 카타르시스가 장난이 아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복음말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단상
형제들끼리 식탁 대화를 이어가다가 우리나라의 정치교수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와 같은 대학의 교수와 총장들은 그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때에 정치에 쓴 소리도 해가며 어른의 지혜와 지성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후학들을 지도하기에 멘토의 역할이 가능하다.
그리고 절대로 정치와는 거리를 두며 비판적인 자세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네 학계를 현실을 보고있자면 전통 있는 대학들의 학자들이 많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 명예가 무엇인지, 권력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이름난 교수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정치에 입문을 하여 그 끝이 좋았던 예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학자로서 존경을 받다가 어찌어찌하여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그러다가 이런저런 구설수와 실정에 허망한 결말이 마치 무슨 수순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다.
그렇게해서 묵묵히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들까지 싸잡아서 '교수짓'으로 불명예스럽게 한다.
지식과 지혜를 빌려 주는 것은 좋겠지만 '당신 아니면 안되겠다'는 꼼수에
그 허망한 명예욕에 평생 쌓아왔던 학자적인 자세를 무너트리니
그 이름이 필요할 때는 간, 쓸개 다 내줄 것 같이 아양을 떨다가
자기 편임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깎아내리는 현실의 정치에서
그 순진하신 분들이 뒤끝이 참으로 안좋게 끝나는 것이 한 편의 개콘을 보는 것 같다.
신부님과 수사님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가
혼잣말로 "우리도 '대쪽같은 선비'가 필요하지..." 하고 중얼거렸더니
막거리를 한사발 들이킨 동기수사님이 꿈벅꿈벅 왕방울 같은 눈을 화들짝 치켜뜨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형욱이가 이제 저런 말도 할 줄 안다'며 난리를 피운다.
'대쪽같은 선비'를 '개조까튼 새끼'로 잘못 알아들었단다.
그 말에 덩달아 어이가 없어 '어떻게 "대쪽같은 선비"를 그렇게 알아 들을 수 있냐'며
어이상실, 난리도 아닌 말에 배를 잡고 한참이나 웃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우리 셋 대화에서 허망하고, 분하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대할 때면
서로들 '대쪽같은 선비'라고 외치며 화를 풀곤 한다.
'대쪽같은 선비' 카타르시스가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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