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마음'이란... 본문
1독서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복음말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단상
부자는 자신이 뜨거운 불길 속에 있는 처지가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거지 라자로와의 사이에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섯 형제에게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라자로를 보내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설득해 달라 청한다.
드디어 라자로가 부활하여 부자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 있는 부자’의 부탁으로 거지 라자로가 부활하여 왔노라고
‘내 말을 귀 담아 들으시오’라며 부자의 다섯 형제에게 말한다.
형제들은 거지 라자로를 단박에 알아보고 ‘그가 죽었다 살아 왔구나’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여 하느님을 신앙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시 기도는 내 마음과 다르다.
기도 안에서 ‘부활한 거지 라자로’는 오히려 빗자루에 두들겨 맞고,
온 몸에 소금 세례를 받으며 문 밖으로 내쫓긴다.
그러면서 그이들의 냉소는
“웃기지도 않네, 뭐 지가 얼마 전에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죽은 ‘거지 라자로’라고?
우리를 무슨 바지저고리로 아나,
어디서 밥 한 술 얻어 쳐먹겠다고 또 기웃대고 지랄이야.
너도 거지새끼 라자로처럼 죽도록 맞아 볼래?
여기가 무슨 거지새끼들 죽는 자리도 아니고,
어서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안 꺼져.
(하인들을 보며) 이놈들아 뭐해 어서 소금 뿌리지 않고!
다시 한 번만 얼씬 거리기만 해 봐라, 그냥 다리몽둥이를 확 부러뜨릴까보다.”
아브라함의 말처럼
모든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좋은 말씀과 표징과 예언자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맞선을 보고 온 자녀들에게 그 만남을 주선한 부모님은 묻는다.
“그 사람 어떻디?” 되돌아오는 대답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표현해 준다.
"마음에 들어” 혹은 “마음에 안 들어”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필요치 않아 보인다.
‘마음이 들면’ 좋은 만남이 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꿎은 부모들은 괜한 수고를 했다고 자녀들의 핀잔을 듣게 된다.
하느님을 알아보는 우리 마음 역시도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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