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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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생각
"김상! 김치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음식 전체가 김치 냄새가 배여 곤란하니까. 다른 곳으로 치워 주세요."
아침 식사 중에 공동체의 한 신부님이 곤란함을 토로해 온다.
순간 '미안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슬그머니 당혹감이 올라온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지하실에 있던 조그만 냉장고를 옮겨와
김치만을 넣는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에 또 같은 말을 듣고 만 것이다.
한국의 김장철에 맞추어 본가에서 김장김치가 속속 도착했다.
박신부님 댁에서, 내가 아는 은인분이 김장김치를 보내온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공동체의, 한국인 혼자 살고 계시는 구 신부님 본가 것이 더해져
세곳 본가에서 보내온 터에 신학원공동체에서는 때아닌 김치 풍년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작은 냉장고에 꾸깃꾸깃 구겨넣으면서 더 이상 여유 공간이 없던터라
살짝 걱정이 일었지만 김치냄새가 덜 나도록 랩까지 씌워서 보관했던 것이다.
그런데 슬금슬금 숨을 쉬기 시작한 김치에서 조금씩 신맛이 풍겨나오더니
급기야는 다른 먹거리의 냄새마저 다 잡아먹고 말았다.
먼저번에도 이같은 이슈로 어려움을 토로하던 신부님이였던터라
옮겨 두면서 조심조심했는데 역시나 아니나다를까 불편함을 토로해 온다.
작은 냉장고를 김치냉장고를 사용한 이후로는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공동체에 언제나 김치냄새가 난다'느니,
'신라면 냄새가 식당에 가득하다'느니 어느 때는 눈치밥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젊은 일본 신학생들과 베트남 신학생들이 한국 사람들 보다도 더 김치와 신라면을 챙겨 먹으니
그런 때는 나는 그냥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렇지요'라며 미안한 웃음을 짓고 만다.
그런데 새벽 댓바람부터 사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톡 쏘듯이 문제제기를 하고 사라지면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인사를 건네던 나는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슬그머니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 신부님과 다른 이들을 생각해서 평소에는 절대 김치를 공동냉장고에 넣지 않는다.
이번에는 모처럼 본가에서 저마다 한꺼번에 보내온 것이라 예외적인 현상으로
작은 냉장고가 가득 찼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랐다.
게다가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눈물을 머금고 주위의 벗들에게까지 퍼 주지 않았던가,
또 냄새가 덜 나도록 랩까지 씌우는 등 나름 고민을 했었던 터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톡 쏘아부치고
이쪽에는 아무런 해명할 기회도 주지않고
아침 식탁에도 앉지도 않으채 그렇게 사라져 가 버리면
빵이 코로 들어가는지 커피는 왜이리 쓴 것인지 남겨진 사람도 밥을 넘기지 못한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이쪽 입장까지 살필 수 없었던 신부님을 생각해 본다.
공동체에서 '투덜이 스머프'라고 늘 쉽게 불만을 터트리는 신부님이라는 것,
다른 젊은 형제들과 달리 김치를 절대 먹지 않는 신부님이라는 것,
평소 사람 좋게 웃어 주는 나를 다른 누구 보다도 편안하게 대한다는 것,
그래서 '고멘나사이네; 미안해'라는 내 사과에 아침부터 퍼부어 댄게 또 그렇게 미안한지
밥도 안먹고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받아
주위의 신학생들보다 일찍 서품을 받은 터에
나이 많은 신학생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이니
전부터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듯 싶다.
솔직히 슬그머니 올라오는 마음이 나이 많은 티를 내서 한 마디 해 주고 싶기도 했으나
'나는 저 나이 때 저이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음'을 알기에
조용히 올라오는 것들을 지켜보며 그 형제의 마음도 헤아려 본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마음 써온 것이, 베푼(?) 것들에 기대를 걸었던지
슬그머니 본전생각이 나는 것은
사람이, 이 얼마나 간사한 마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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