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소년원 방문 본문
愛光女子学園 방문
50년을 교정사목에 종사하고 계시는 에르난데스 수사님을 따라 소년원을 방문했다. 바쁜 학업에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기에 대신학교 부제님들의 실습 떠나는 일정에 나도 손을 들고 따라나선 것이다.
주택가 한 복판에 있는 소년원은 학교명만 얼핏 보면 명문 가톨릭법인 사립여자학교 이미지가 풍겨나온다. 그래서인지 종종 입학 문의가 온다는 교도관의 자랑 아닌 자랑이다. 가을이 수놓아진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과 파란 잔디 운동장, 가지런히 정리된 일본식 정원, 연중 언제나 가능하다는 온수 실내 수영장, 아담한 체육관, 핑크아이보리 등등의 중/고등부 교실 그리고 다다미 침대가 놓여진 4인 기숙사 등의 시설만 보면 그런 오해도 가능하겠다 싶다. 발길 닿는 곳곳이 예쁘장한 것이 담장의 철조망만 없다면 실제로 여느 사립여자학원과 다를 바가 없다.
소년원에 대한 전체적인 오리엔테이션과 4층 건물을 1층부터 주욱 둘러두고 수업중인 아이들의 교실로 들어섰다. 12살부터 성인 이하의40여명의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 6개월 단기보호, 2년 이상의 장기보호 프로그램에 맡겨진 아이들이다. 중고생 아이들이다보니 정규교과수업이며 사회적응훈련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아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가정에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편모/편부도 있지만 반 수 이상이 정상적으로 부모가 있는 가정임에도 20년 이상 경기침체로 어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벌이에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단다. 초등학생때부터 그렇게 엉켜진 실타래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풀리지 않더니 결국 보호시설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그이들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면 사뭇 다른 이야기책이 쓰여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첫 인상은 ‘야생화’를 보는 듯 싶었다. 같은 옷차림, 같은 신발,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아이들인지라 리본과 작은 삔과 장식품들로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다. 한 아이 한 아이 인사를 건네면서도 멋지게 생긴 오빠들이 교실에 죽 둘러서자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붉히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만비키(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일)라는 좀도둑질, 누군가에게 상해/폭행을 가해 상처를 입혔다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50% 이상이 그런 일탈로 이곳에 보내졌다. 상습적인 좀도둑질이나 상해/폭행이라고 해도 혼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한 아이를 때리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혼자서는 누군가를 때리거나 이지매 시킨다는 것은 엄두도 못날 새가슴인 아이들인 것이다.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건네고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고, 지금 웃는 얼굴이 진짜가 아니라는 오리엔테이션 내용들은 어느새 전부 잊혀지고 말았다. 그냥 밝고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들일 뿐이다.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 집보다 학교보다 이 보호시설이 더 ‘편하다’라고 한다. 이제껏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이런 보호시설이 오히려 ‘안전하다’라는 아이들의 말에 괜히 마음이 저려온다.
그랬구나.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살아가는 게 온통 짐투성이였구나. 돌보아 주는 이도 없고 누구하나 관심가져 주는 이가 없어, 혼자서 온 힘을 다하여 꾸역꾸역 살아냈구나. 그래서 철조망 넘어 갇힌 삶이 그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이겠구나. 이 안에서 아침을 맞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조용히 밥을 먹고, 손에서 놓은 공부를 하고, 터 놓았던 적이 없던 마음을 같은 처지의 친구와 나누고, 전에 없이 이제는 함께 놀 친구들이 있고, 그이들과 연극을 하고, 알록달록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미용수업에서는 서로의 얼굴에 화장을 해 주고 머리카락을 잘라 주는구나. 그러면서 밖에서 받지 못한 관심을 그렇게 부족한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나누어 주고 있구나. 그렇게 또 자신을 지키고 있구나.
부제님들이 줄줄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전체가 한 목소리로 응답을 하고, 질문과 답을 하면서 손을 들며 허락을 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저마다 모양새며 향기가 너무 달라 오히려 반짝반짝 야생화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앞날에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본다. 이 아이들이 나아갈 세상에 함께 해 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잊어버린 말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 할 수 있게 되기를…, 또 그 애처로운 말들에 어른들이 기꺼이 손 내밀어 잡아 줄 수 있기를 청해 본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곳이라 주변이 온통 맨션 투성이다.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두려워 알록달록 단풍을 입은 계절임에도 아이들은 잔디밭 넓게 펼쳐진 운동장에를 나가지 않는다. 그 마음도 헤아리게 되면서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이 부디 더는 상처받지 않기를… 이 철조망 쳐진 작은 세상에서 한번의 실수로 갇혀있지 말고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수 있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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