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 이럴 줄 알았다 본문
지난 간밤에 입술 끝에 덧이 나기 시작하더니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는
드디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덧난 곳이 터져버린 것이다.
슬그머니 본전(?) 생각이 올라온다.
그래서인지 곱지 않은 말이 나갔다.
"덧난 곳이 찢어졌네"
아침 식탁이 썰렁하니 말이 없다.
안그래도 어제부터 살짝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심상치 않은 이 말 앞에서
아무런 내색없이 식사를 하던 동료 수사님이 말을 잇지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좀 치사해 보이기는 하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이 말은 날카로움이 묻어있다.
'다 너 때문이야야
니가 쉬는 날에 공동체에 손님들을 왕창 초대하는 바람에
어제 하루종일 그 뒷치닥거리를 해야해서
내 입술이 터져버린 거야'라는 뾰족한 말이다.
사정은 이랬다.
이제 막 이주노동사도직에 파견받은 수사님이
신자공동체인 필리핀 노동자를 초대했다.
처음에는 그 공동체의 총무와의 만남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홉명이 모이는 커다란 파티가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커져버린 규모에 어이가 없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공동체적인 문화 안에서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으로 그리고 결국엔 아홉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뻐하고 유쾌한 사람들답게 그이들은 늘 이렇게 떠들썩하게 모인다.
그런데 이 일을 예상치 못하고 만남을 추진했던 수사님 덕분에
모처럼의 휴일이 손님 접대로 몽땅 사라진 것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이었다.
공동체까지 버스가 다니지 않은 터에 이제 막 초보 운전자가 된 나는
손님들이 올 때마다 나가서 모시고 또 모셔드려야 했다. 무려 일곱 번을 말이다.
춥지 말라고 피워둔 화톳불 연기가 맵다며 이웃집 할아버지는 불평을 토로하시고,
누구가 초행길이라 자동차로 남의 집 콩팥을 갈아엎은 덕분에
아침부터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게다가 밤 사이 산 처럼 쌓아둔 설거지와 쓰레기를 보고서는
드디어 뚜껑이 열린 것이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없던 아침이었다.
초대한 손님 앞에서는 차마 보일 수 없었던 레이져 광선을
다 떠난 그 아침에는 마음껏 '나 화났거든'하며 불편함의 기운으로 팍 팍 내뿜어댔다.
그리고 조금은 유치하게 '덧난 곳이 째졌다'며
'다 너 때문이야'라고 야료를 부렸다.
나는 홧김에 뾰족한 말을 내뱉고,
동료 수사님은 묵묵히 밥그릇만 쳐다보고,
또 그것이 미안해서 돼도 않는 말로 '난립니다요'라며 애교를 부리고,
그이의 어쩐지 미안함에 나도 어쩔줄 몰라하는 이 모습에 또 혼잣말 해본다.
'내 또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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