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사제... 본문
언젠가 봉사직에 부름받은 수품자를 향해 동경교구 주교님께서는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섬기는 사람’, ‘교회의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봉사자, 교회의 봉사자, 이웃을 향한 봉사자’ 그러면서 수품자를 향해 ‘당신은 교회의 사람’이라 불러주셨을 때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설레이는 것이 수도생활의 기쁨에 더하여 봉사직에 대한 부르심에 다시 한 번 기꺼이 “예”라고 응답하게 합니다.
작년9월부터 동경의 메구로성당에서 주중사도직을 하고 있습니다. 성체배령과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성경말씀과 교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일이 공부 소임으로 파견받은 단조로운 일상에 커다란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성체분배를 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검은 수단 위에 하얀 반백의를 멋지게 차려 입고 제 앞에 줄을 선 신자분들의 손 위에 처음 성체를 내려놓는 순간, 부끄럽게도 제 손과 마음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댔습니다. 성체를 받아든 신자분들도 깜짝 놀란 눈입니다. 주례신부님과 나란이 서 있는 네모 반듯한 신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확연히 떨리는 손으로 성체를 분배하고 있으니 저 보다 더 당황해하며 손을 내밀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그날 왜 그렇게 몸과 마음을 떨었던 것일까요?
그 순간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며 그날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앞으로도 제가 주님을 신자분들에게 전할 때 오늘과 같이 몸과 마음이 떨리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늘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게 해 주십시오. 매일같은 일상이 되어 제대 위에서 뭐든지 능숙한 사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는 늘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몸도 마음도 떨게 해 주십시오.’
외국말로 익히는 전례와 신학과 영성은 어딘지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늘 두번 세번 체크를 합니다. 분명히 머리로 알고 있던 것도 입밖으로 표현할 때는 다시금 발음과 스펠링을 꼼꼼이 체크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버릇은 평생 갈 듯 싶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은 억울한 감마저 들면서, 이렇게 약한 뿌리로 제대로 신자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몇번이고 반복하게 되면서 다시 하나 얻어 들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신자들과 마주할 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 모국어로 배우고 익혔던 것들과 차원이 달라서, 그런 약점과 약함을 메우기 위해 아무리 작은 것들도 책을 찾아보고, 저 보다 나은 이들에게 질문하고, 또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외국어로 공부하게 되면서 제 자신이 가진 약점을 너무도 잘 볼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 하느님에게만 전적으로 기대어 사는 그런 사제가 될 것 같습니다.
수도성소에 ‘예’라고 응답하고 10여년간 사제직을 열망하면서 ‘사제란 무엇인가, 어떤 사제가 될 것인가’에 대해 숙고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떠올랐던 하나의 사제상은 당연히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죄인과 의인의 구분없이, 창녀와 세리들과 바리사이들과 제사장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격렬하게 토론해가며 밤을 새워 그 자리에 ‘존재하시는being’ 예수님입니다. 사제란 ‘그냥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doing) 인간적인 한계를 지닌 사제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제가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함께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듯이 사제로 불림받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관계없이, 의인이든 죄인이든 탓하지 않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예수님을 닮은 사랑과 연민으로 ‘그냥 그곳에 함께 있음’을 실천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제 주위에는 그런 닮은꼴로 살고 계시는 선배 신부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강정과 대한문의 길 위에서, 기도하는 피정집에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학교에서, 무엇인가 성과를 내고 수많은 일들을 해결해 내는 해결사가 아닌, ‘그냥 함께 있음’으로 존재로서 위로를 전하는 분들 말입니다. 지난 10년간 이러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또 그러한 성실한 선배님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분들과 같은 형제 사제가 될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첫 봉사직에 임했을 때의 가슴설렘과 그 부들부들 떨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올렸던 ‘당신 앞에 설 때 한평생 몸과 마음을 떨게 해달라’는 기도가 그렇습니다. 또 사제직을 준비하고 간절히 열망하면서 모자람 투성인인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약함이 당신께 다가가는 도구가 되기를, 그리고 이렇게 당신께 기대어 살기를 기도합니다. 제 힘으로 해내는 많은 일로써가 아닌 예수님을 닮은 존재로써 양떼들과 함께 머물며 양냄새 가득 풍겨나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한평생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 제 이웃의 사람’으로 봉사직에 부름 받아 모두를 섬기며 살 수 있기를 그렇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 제가 늘 당신 앞에서 몸과 마음이 두근거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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