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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한 사제의 죽음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어느 한 사제의 죽음

해피제제 2014. 9. 22. 10:00

 

 

이른 아침

간밤에 없던 누군가의 부고가 게시판에 써져있다.

회원명부를 찾아 이름과 얼굴을 확인한다.

스즈키노부아키 신부, 85, 역사학자

 

며칠전까지만해도 죠치대학 교정을 오가며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가.

젊은 시절의 사진과는 너무 달라진, 엄청 조그만해진 몸집에

늘 같은 시간, 보조기를 밀며 산책을 나서시던 분

말이 없으신 가운데도 인사를 건네면 어린아이처럼 웃어주시던 분

내 기억 속 스즈키 신부님은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여름계절학기에 맞추어 죠치대학 예수회 공동체를 찾았더니

‘AYD아시아청년대회참석과 교황님의 한국방한이 어땠냐며 관심을 표한다.

한창 신이나서 이번에 경험했던 청년대회와 꿈에 그리던 교황님과의 만남,

그리고 2년 반만의 한국행을 나누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한국 예수회원들의 근황을 물어오는 분들이 있다.

어떤 회원과는 미국에서 독일에서 또는 로마에서 함께 유학을 했다며

그이가 잘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표한다.

그러던 중에  S 신부님이 윤 요셉 신부님은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어온다.

나는 한 소식전하듯

그분 지난달 730일 하늘나라로 떠나셨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부님 눈이 휘둥그래지며 마주하던 자리에서 내 옆자리로 급하게 자리를 옮기셨다.

진짜로 윤 요셉 신부님 맞아요?” 다시 확인하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 올해 52세 되신 윤상용 요셉신부님 맞아요.” 했다.

그러자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신부님의 눈주위가 빨개지더니

이마에 손을 대고 어쩔줄 몰라 하신다.

급기야는 식탁에서 이마를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시며 우신다.

그 모습에 아무런 기대없이 윤 신부님의 부고를 전하던 나 역시

괜히 코끝이 찡해오면서 덩달아 말을 잇지 못하고 만다.

 

일본에서 몇년간 신학을 공부했던 윤신부님인지라

한달전 그분의 부고를 공동체에 전했을 때

그다지 기억해 주는 이들이 없어 조금은 섭섭했다.

(젊은 신학생들의 공동체인지라

15년 전의 윤신부님을 기억해 주는 분들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담담하게 잊고 지나갔는데

오늘 느닷없이 한 신부님이 어쩔줄 몰라하며 한참을 우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가슴이 짠해진 것이다.

 

윤신부님의 소식을 물어온 신부님은

99년 윤신부님과 신학원에서 같이 살면서 몇년간을 함께 공부 했던 인연에

다른 누구보다 그분에 대한 추억이 각별했나 보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누구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S 신부님이라면

아직 언어도, 일본이라는 사회에도 적응을 못하던 윤신부님에게도

분명 큰 친절을 베푸셨으리라.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셨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일본과 한국에서 사제가 되어

서로에게 맡겨진 사도직에 묵묵하셨으리라.

 

그런 친구가 갑자기 서둘러 하늘 나라로 떠났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에

어쩔줄 몰라하며 식탁에 머리를 떨어트리고 한참을 그렇게 울게 만들었나 보다.

내게는 같이 살아본 적이 없고 그래서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 본 적이 없는지라

동료 신부님의 한 부고에 위령미사로 추도했던 것과는 달리

S신부님께는 내가 모르는 윤신부님에 대한 기억이 눈물로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망연자실 눈물을 뚝 뚝 흘렸는지 모른다.

 

한참을 신이나서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또 듣다가

갑자기 우리 둘이 그렇게 울먹대니  

옆자리에 앉았던 M신부님도 덩달아 이 사태를 어쩔줄 몰라 하신다.

그러면서 허둥대며 우리 둘에게 위로를 건네신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잖습니까.

그 신부님 영혼, 하느님께서 잘 돌보아 주실 것을 우리가 믿고 있으니

그분 영혼 위로해 주십사 하고 우리 여기서 떠나간 신부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한다.

 

오늘 스즈키 신부님의 부고에

한 자리에 앉아 깊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고

인사만 건네며 바쁜 듯이 지나쳤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눈물로 기억될 신부님임을 알기에

M신부님의 권유처럼 그분의 영혼을 잘 맞아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청한다.

 

늘 구부정한 모습으로 산책을 나서는 신부님을 기억하는 나는

한 길 곧게 사제로써 살아오신 그 모습만으로도

수도 없이 넘어질 수 있는 그 약한 순간을 하느님께 기대어

그래도 죽음의 순간까지 하느님의 신부로 머물렀다는 약속을 다함에

존경과 고마움을 올린다.

신부님 하늘 나라에서도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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