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해피제제 2015. 2. 6. 12:37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메구로성당으로 주말사도직을 다니고 있다.

대부분 필리핀계 신자들로서 약 300여명이 매주일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 중 영성체를 행할 때의 필리핀 신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얌전한 일본신자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성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후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성체를 받아드는 모습은

두 그룹이 같다.

그러나 온 몸으로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필리핀 신자들은

앞선 영성체 모습에 더해 무릎을 꿇거나 혹은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신다.

영성체를 행한 후, 또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발레리나가 사뿐히 무릎을 튕기듯 제대를 향해 경쾌하게 인사를 드리거나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체를 분배하는 나 역시 괜히 기분히 좋아진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란히 줄을 서서 경건하게 혹은 수줍게 내미는 손 위에 성체를 올려 두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마주하며 성체를 배분한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50대 중반의 여성 신자분이 내민 손 때문에 와락하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차마 내밀기 부끄러운 듯 손바닥을 다 펴지 못한 채 내밀어진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말 그대로 손금 한 줄 남겨진 데가 없이 온통 벗겨지고 허물진 손바닥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일본에서 하는 일 중에 도시락 만드는 일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었다.

편의점의 나라일본에서는 모든 도시락이 당일 새벽에 만들어져 각 진열장에 내걸린다.

위생에 있어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도시락 같은 먹거리는 특히 더 엄격하다.

그래서 당일 새벽에 만들어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여성노동자들 차지다.

이른 새벽, 매일같이 편의점의 도시락을 만드는 일의 고됨은

메구로성당의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을 통해서 몇번인가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실제 눈 앞에서 그런 고된 손을 본 것이다.

 

사연이 있는 손이라서일까?

괜히 가슴이 아려져 코끝까지 싸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 펴지 못한 채 수줍게 손을 내밀며 동그란 눈으로 재촉하는 그 분에게

두 눈을 잠시잠깐 마주하며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에 예수님을 올려 둔다.

그리고 그 후 다른 분들의 내민 손 역시 하나 둘 찬찬히 바라본다.

 

예수님은 그렇게 저마다의 상처투성이 삶 안으로 오신다.

예수님이 우리네 힘겨운 일상 한가운데 부끄럼없이 놓이신다.

아프고 갈라지고 외롭고 숨 쉬기조차 버거운 내 손바닥 위로 매일 그렇게 오신다.

그렇게 일상으로 내려 오시는 예수님을 수줍게 손 내밀어 받아 모신다.

내 생명으로

 

'마음에게 말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2) 2015.03.18
서품의 의미  (2) 2015.02.06
11시에 와서 6시에 떠나다  (0) 2015.01.28
제2라운드  (0) 2015.01.26
공부가 되다  (4) 201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