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본문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로 오시는 예수님
메구로성당으로 주말사도직을 다니고 있다.
대부분 필리핀계 신자들로서 약 300여명이 매주일 미사에 참례한다.
미사 중 영성체를 행할 때의 필리핀 신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얌전한 일본신자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성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후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성체를 받아드는 모습은
두 그룹이 같다.
그러나 온 몸으로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필리핀 신자들은
앞선 영성체 모습에 더해 무릎을 꿇거나 혹은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신다.
영성체를 행한 후, 또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발레리나가 사뿐히 무릎을 튕기듯 제대를 향해 경쾌하게 인사를 드리거나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체를 분배하는 나 역시 괜히 기분히 좋아진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란히 줄을 서서 경건하게 혹은 수줍게 내미는 손 위에 성체를 올려 두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마주하며 성체를 배분한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한 50대 중반의 여성 신자분이 내민 손 때문에 ‘와락’하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차마 내밀기 부끄러운 듯 손바닥을 다 펴지 못한 채 내밀어진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말 그대로 손금 한 줄 남겨진 데가 없이 온통 벗겨지고 허물진 손바닥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일본에서 하는 일 중에 도시락 만드는 일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었다.
‘편의점의 나라’ 일본에서는 모든 도시락이 당일 새벽에 만들어져 각 진열장에 내걸린다.
위생에 있어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도시락 같은 먹거리는 특히 더 엄격하다.
그래서 당일 새벽에 만들어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여성노동자들 차지다.
이른 새벽, 매일같이 편의점의 도시락을 만드는 일의 고됨은
메구로성당의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을 통해서 몇번인가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실제 눈 앞에서 그런 ‘고된 손’을 본 것이다.
사연이 있는 손이라서일까?
괜히 가슴이 아려져 코끝까지 싸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 펴지 못한 채 수줍게 손을 내밀며 동그란 눈으로 재촉하는 그 분에게
두 눈을 잠시잠깐 마주하며 상처투성이 손바닥 위에 예수님을 올려 둔다.
그리고 그 후 다른 분들의 내민 손 역시 하나 둘 찬찬히 바라본다.
예수님은 그렇게 저마다의 상처투성이 삶 안으로 오신다.
예수님이 우리네 힘겨운 일상 한가운데 부끄럼없이 놓이신다.
아프고 갈라지고 외롭고 숨 쉬기조차 버거운 내 손바닥 위로 매일 그렇게 오신다.
그렇게 일상으로 내려 오시는 예수님을 수줍게 손 내밀어 받아 모신다.
내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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