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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성소가 뭐길래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성소가 뭐길래

해피제제 2015. 5. 11. 09:45

 


 

글쓴이/크리스틴 그래디 길거

 

우리 아이들은 나의 관심을 끌기가 꽤나 어렵단다. 나는 걸핏하면 대화의 주제를 벗어날 뿐더러, 지각하기가 일쑤이고, 곧잘 산만해진다. 일에 아낌 없이 시간을 할애하고 나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 부족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다치는 경우, 아니면 곤경에 처할 것 같은 그런 심각한 상황이 닥치면 나의 촉수는 무한대로 가동된다. 정교하게 조준된 추적장치나 다름없다. 그럴 때 아이들이 나의 레이더망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번은 큰 딸이 대학 친구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다가 약속한 때에 집으로 전화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나는 딸이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도시에 있다는 한 토막의 정보만으로 이 아이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반경 30킬로미터 내에 있는 모든 숙소에 전화를 걸며 영어로 통화하기를 고집한 끝에, 결국 딸이 머물고 있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현지 시각 새벽 2시, 피곤한 목소리의 호스텔 매니저로부터 수화기를 건네 받은 딸은 놀란 척도 하지 않았다. “엄마, 저는 잘있어요.” 그러고는 말하길, “도대체 엄마가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하지만 그 이유는 누구에게나 자명한 것이다. 걱정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만 모를 뿐.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순간마다 아이들과 함께 함께하며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에 혼신을 다하여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인생에서 매번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즉 할 수만 있다면 엄마들이 아이를 대신해서 해줄 법한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망상에 가깝다. 엄마들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내가 아이 셋을 키우면서 얻은 교훈인데, 특히 아들을 통해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된다. 이 아들이 10년 전에 했던 그 선택을 나는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하는 중이다.

 

패트릭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예수회에 들어가고 싶다고 우리 부부에게 말했을 때, 우리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수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부부는 더욱 더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로서 우리 아들이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명이라는 수도 서원을 하게 된다는데, 그 서원이라는 게 21세기 미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거의 딴 세상 이야기로 여겨질 만한 것들이다. 게다가 사제로 서품 받기까지 10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사제로서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것들, 즉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줄 수 있게 되기까지 말이다.

 

우리 아들은 거의 평생이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학위를 받아봐야 그 대가는 고작 본당이나 교도소, 아니면 학교나 무료 급식소 같은 곳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것일 터였다. 우리 아들이 살 곳은 계속해서 예수회 공동체가 될 텐데, 태어나서 자란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는 예수회 공동체가 우리 아들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아들이 예수회원으로 사는 한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라고 하는 일을 해야할 것이며, 너무 늙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예수회원들을 위한 양로원으로 물러나서 늙어빠진 다른 예수회원들과 함께 기도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스무 살짜리 청년이 멀쩡한 정신을 지니고서 왜 그런 선택을 하겠느냔 말이다.

 

누구의 영향으로?

내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할지, 심지어 무엇을 믿을지까지도 정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내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대신해서 그런 것들을 결정해 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이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자기 뒤를 이어 의대에 진학하지 않고 음악을 선택한 아들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배신자”라 부른다. 내 친구의 부모님은 모르몬교도인데 자기네 집안에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그 종교로 딸이 되돌아 오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자신들의 어떤 행동 때문에 또는 자신들의 어떠한 점이 자녀들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영향을 끼쳤는지, 그게 아니면 어떤 영향이라도 주기나 했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내 아들의 선택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나는 내 아들이 온갖 이유를 무릅쓰고도 가톨릭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아이를 가톨릭 신자로 키우지도 않았다고!” 내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이 친구가 호기심 내지는 말 안 듣는 자식을 둔 나에게 일말의 동정심 같은 것이라도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 대신 나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 말을 해주었다.

 

“하느님이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너희 가정에 손을 대셨구나.” 그가 다정스레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하느님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패트릭은 하느님이 그 모든 것에 관여하고 계신다고 말할 것이다.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네 삶의 여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도가 하느님께는 있다고 아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가 아들을 키운 방식이 이 아이로 하여금 다른 종류의 삶에 개방적일 수 있도록 이끌었다면, 그리하여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께로 이끌었다면, 왜 내가 그것을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예수회원이 된 이후 내 아들의 활동은 상상가능한 거의 모든 방면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는 더 이상 미네소타 세인트폴에 위치한 예수회 수련원에 입회하던 때의 그 안락한 중산층 청년이 아니다. 그가 파견받아 간 곳은 나라에서 가장 열악한 공공주거 개선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카고, 인도 오지의 본당,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여성 교도소에 이른다. 그는 사우스 다코타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의 고등학생들을 가르쳤고, 네브라스카에서는 유아세례를 주고 혼인 면담을 하며 병자성사를 주는 등의 사목활동도 하였다.

 

자신의 사제 생활에 관하여 들려주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사람들을 보살피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이 아이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턱 놓인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이 아이가 혼자라서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누구보다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때가 되면 휴가도 간다.

 

걱정한 보람

그렇다고 해서 나의 걱정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제직을 선택한 아들을 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물어보는 것들이 있다.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들을 가톨릭 신자로 기르는 것이 어땠는지, 그리고 아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들도 놀랐었는지 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아들의 기나긴 양성 기간과 정처없어 보이는 생활, 그리고 노년에 대해 그들도 나처럼 노심초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패트릭의 친한 친구인 제프의 어머니 캐런 설리번은 아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행복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제프의 운명이라는 것을 “그냥 알았다”고 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걱정은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제프가 너무 멀고 위험한 곳으로 파견되지는 않을까?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올 수 있을까? 또 흰 장갑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장갑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도 장갑은 지금껏 내가 걱정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캐런이 설명하길, 사제의 어머니에게는 하얀 레이스 장갑을 낀 채 무덤에 묻힐 권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껏 그 이야기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패트릭은 그런 전통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고, 그것은 제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구글에 도움을 청했다. “흰 장갑”, “천주교 장례식”, 그리고 “사제의 어머니”로 검색한 끝에 찾은 것은 워싱턴 DC에서 본당사목을 하는 찰스 포프 몬시뇰(Msgr. Charles Pope)의 글 한 편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사제서품식 때 수품자의 손에 성유를 붓고 나서 라틴어로 manutergium(손수건)이라고 하는 천으로 새 사제의 손을 감싸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목적, 즉 성유가 제의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그 천은 사제의 어머니에게 전해져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이 간직되었다가, 어머니의 시신이 관 속에 뉘어질 때 그 손에 쥐어진다. 사제의 어머니가 하늘나라의 입구에 도착하면 곧장 주님께로 안내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 여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실 것이다. “나는 너에게 생명을 주었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그러면 이 여인은 손에 지니고 있던 그 천을 주님께 건네며 말할 것이다. “저는 제 아들을 사제로 당신께 바쳤습니다.” 이 말과 동시에, 천국 입장 허가가 떨어지는 것이다.다. 어쩌며 그것은 아들을 염려하며 살아왔던 그 모든 세월에 대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글쓴이 크리스틴 그래디 길거(KRISTIN GRADY GILGER)는 애리조나 주립대의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the Walter Cronk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at Arizona State University) 부학장이다. 최근 그녀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던 자신의 경험 및 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가족이 가톨릭 교회의 품으로 되돌아온 일에 관한 회고록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