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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왜 하필 당신에게.... 본문

매일의 양식

왜 하필 당신에게....

해피제제 2011. 9. 8. 07:00
1독서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복음말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단상

그녀는 머리 숙인다.
유순한 태도로, 그러나
밑으로 떨어뜨린 그녀의 눈길은
천사에게 묻고 있다. 왜
이 로맨스
내가?

- 사무엘 메나쉬의 <수태고지>에서


'습'이란 무서운 것이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러 갈 때면 늘 성모님 상 앞을 지나가게 된다.
모두들 발을 멈춘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넨다.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내게는 낯설기만 한 풍경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터에
(참고로 나를 길러주신 분은 목사님이시다.)
성상 앞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특히 절 하는 행위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라는 뼛속 깊은 가르침은
지금 천주교 신자가 되어서도 '성모님상' 앞에서는 늘 복잡한 상황이다.
대신 발을 멈추고 잠시 짧은 기도를 바친다.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얀 석고의 반들반들한 우윳빛 성상은 낯설다.
칠이 더해진 하늘색 옷에 베일을 쓰고 아름답게 조각된 그 모습은
귀부인같은 모습에 왠지 어색하다.

내 기도의 어머니는 늘 거친 질감의 그러나 정갈하게 갖춘 모습으로
태양을 가득 받은 구리빛의 건강한 혈색이다.
유태인이 하얀색 피부가 아닌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건조한 날씨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먼지가 풀 풀 날리는 터에
늘 얇은색 햇빛 가리개용 스카프를 걸치며 먼지가 내려 앉은 옷차림이다.
가냘프지만 억척스런 삶의 모습이 그대로 손과 발에 새겨져 있다.
예쁜 손, 아름다운 피부를 가꿀 시간이 없다.
빳빳한 머리결(?)에 언제든 먼지를 툴 툴 털고
유쾌한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잘도 다닌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셨다'는 이 어머어마한 로맨스의 주인공은
암울한 로마 제국 속국의,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그래서 배운 바 없고, 온갖 가사일로 거친 손과 발을 지닌
그러나 '왜?'라는 '희망'을 품은 명랑한 처녀다.

이 아침 유대 시골의 한 소녀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왜 하필 당신에게...'   

성모님은 숨은 이야기들을 소근대며 들려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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