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의로운 사람도 두렵긴 하다 본문
1독서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2독서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복음말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단상
김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도직을 마치고
오랜만에 다시금 ‘이웃살이’ 전 사도직장을 찾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 쉬는 터에 여전히 와글와글 분주한 사무실 안이다.
신부님과 수사님 그리고 소장님도 그 복작복작한 가운데 여전히 서 계시고,
태국어 통역 봉사자도 열심히 상담을 했는지 얼굴에 열꽃이 핀 게 한바탕 소란함이 넘쳐 난다.
.
아니다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소장님은 서류더미(?)를 코앞에 들이민다.
2010년 운영보고서를 수정해 달라신다.
곧 관(官)과 함께할 일이 계획되어 있는데
그때 필요한 서류라며 혼자하려니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란다.
새로운 수사님들이야 아직 적응기이고,
그 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나와 소장님인지라
‘옳커니’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소장님이 나를 가장 반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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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이웃살이까지 온 김에 대충 하는 척 하며 일도 해 주고,
낯익은 이주노동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또 일요일 식사 봉사 재속회 자매님들과는 “아직도 안 가셨어요?”라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로 닭볶음과 함께 맛있게 얻어먹고,
그러다가 저녁에는 김포성당 청년레지오 단원들과도 자리를 함께 하고
이별 인사를 짠하게 하게 된다.
이주사도직을 하면서 정말이지 많이도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정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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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왕창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김포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김포공항에서 이제 막 이륙하는 비행기의 빨간 불빛과 눈이 마주 친다.
동시에 괜한 싱숭생숭한 기분이 찾아 드는 것이,
게다가 온 몸에 잔 떨림으로 가슴이 뛰는 게,
‘아, 이제 가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아주 잠깐 온통 낯선 감정이 온 몸을 스치듯 지나간다.
그러면서 ‘얼레, 이 감정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도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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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들마다 ‘떠날 준비는 잘 되고 있냐’ 며 요즘의 인사말이다.
그러면서 ‘떠나는 마음’은 또 어떠냐며 짓궂게도 물어 오신다.
뭐 그럴 때마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는 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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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그이들에게 들려주는 말들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에서 밥 먹고, 자고, 사도직하며 수도생활 했듯이
일본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자리만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지는 것일 뿐
그닥 크게 다가오는 게 아직은 없습니다.’ 한다.
실제로 닥치면 어떨지 모를 터에
요즘 심기를 물어 오는 질문들에는 이와 비슷한 답변이 대부분이다.
아직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
그런데 창밖 풍경으로 이륙하는 비행기의 불빛을 보게 되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두근두근 잔 떨림과 함께 찾아온 어떤 감정이
괜히 낯설기도 하면서 이아침 기도에까지 따라든다.
그러면서 준비해 간 오늘의 기도주제는 한 쪽에 밀쳐두고
한 참이나 그 낯선 감정에 머물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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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주 찰나에 불과하지만
어떤 ‘두려움’ 비슷한 게 밀려 왔던 듯싶다.
그동안 떠난다는 것에 그리 깊게 생각이 닿아 있지 않다가,
하루 종일 이웃살이 인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서
늦은 밤 시내로 들어오는 텅 빈 버스 안에서
어떤 외로움 진한 것이 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싶다.
그러면서 하늘 위 빨간 비행기의 흔적에 화들짝,
이 정들었던 곳, 눈만 돌려도 정겨운 사람들로 가득한 곳을 떠난다는 심정에
순식간에 ‘두려움’, ‘불안감’이 고개를 들이밀면서
그동안 떠날 준비로 바쁘게 쏘다니면서 미처 돌보지 못한 이 감정들을
조심스레 살피게 한다.
.
호기롭게 혹은 아예 알지 못했던 감정이기에
나 보다 더 염려하는 수도 형제, 동기들, 친구 그리고 가족의 걱정스런 목소리에도
‘뭐 별거 있겠어요? 그냥 지금처럼 적응해서 살면 되지요’ 했다가,
이제야 불쑥 지 존재를 과시하니
제 주인(?) 생각은 눈꼽만치도 않는 녀석이 얄밉기도 하고
그래서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하다가도,
그래도 이아침 지금이라도 ‘나도 좀 봐 주세요’ 앓는 소리를 내어 주니
괜히 안심이 되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또 이 낯선 감정에 괜히 새가슴이 되어 버린 내 꼴도 우습다 하며 피식 미소도 지어본다.
.
다행이다, 너 ‘불안감과 두려움’
앞으로 자주 떠올리게 될 테니 니 주인과 깊게 한번 사귀어 보자.
이렇게 조금씩 너랑 친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너란 녀석도 ‘감사와 기쁨’이 될테지...
아직은 너란 녀석을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 보자.
우리 그래 보자.
.
.
주님, 제가 ‘불안감, 두려움’ 이 녀석들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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