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축제 본문
1독서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복음말씀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단상
또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장례식장이 '대구'였다.
마송 사도직장에서 일도 마치기도 전에 출발했다.
먼 길이라 다시 되돌아오려면 갈 길이 까마득하다.
4시40분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313km를 가리키고 있다.
왕복 8시간이 소요될 듯 싶다.
가는 내내 공동체 한 신부님이 운전을 했다.
옆 자리에 탔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신부님의 운전을 도왔다(?).
재미난 것은 장례식 가는 길이 숫제 나들이 떠나는 듯싶었다.
공동체에 함께 살면서 이렇게 장시간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기가 쉽지 않다.
아침마다 미사를 같이 하고 식사를 같이 하지만
서로의 사도직이 달라 퇴근 시간도 각각이다.
특히 인천에서 혼자 살며 '술집'을 경영하시는 신부님은
일주일에 한 번, 공동체날에 김포 공동체에 오신다.
그래서 함께 살 때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떨어져 지낸지 11개월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맛난 간식도 사먹고
둘 다 좋아하는 커피에 휴게소에서 파는 것 치고는 좀 비싼 커피도 나누면서
근래에 사연들로 나들이 기분을 한껏 내 보았다.
9시가 넘어서 장례지에 도착하니 무려 4시간이 훌쩍 넘는 먼 거리다.
그렇지만 오는 내내 그 시간을 잊을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나들이' 장례식 참석이 돌아가신 신부님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다 싶었다.
또 몇 몇 예수회원들을 만나면서 그래도 수도형제들이 혼자서, 혹은 둘이서 찾아 준
축제의 장이 더 풍성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차를 몰고 광주에서 찾아 온 한 신부님은 거기에서도 4시간 가까이 걸렸다며
'혼자'서 차를 몰고 오는 길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우리 팀이 자랑스레 나누었던 함께 차를 몰고 온 여정에 살짝 부러움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돌아갈 길이 벌써부터 겁이 난다며 엄살을 부리신다.
상주인 신부님은 마지막 수도형제들의 발걸음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주일이 끼어 4일장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약간은 피곤함이 더해 졌지만
그래도 이렇듯 형제들의 찾아줌에는 고마움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내내 졸음(?)운전을 하면서
뒷 자리의 동기 수사님은 여전히 꿈나라이고
옆 자리의 신부님은 자다깨다 하면서 졸지말라며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시는데
새벽 2시가 넘어서 공동체에 돌아왔지만 유쾌함이 가득하다.
장례식이 어쩌면 고인이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면
그래도 찾고 회상하는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추억을 나누는 '축제'가 된다면 너무 억지스러울까?
오늘 내가 다녀온 장례식은 오고가는 길에
그리고 식장에서 모두의 얼굴에 '따뜻함'이 가득하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복음말씀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단상
또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장례식장이 '대구'였다.
마송 사도직장에서 일도 마치기도 전에 출발했다.
먼 길이라 다시 되돌아오려면 갈 길이 까마득하다.
4시40분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313km를 가리키고 있다.
왕복 8시간이 소요될 듯 싶다.
가는 내내 공동체 한 신부님이 운전을 했다.
옆 자리에 탔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신부님의 운전을 도왔다(?).
재미난 것은 장례식 가는 길이 숫제 나들이 떠나는 듯싶었다.
공동체에 함께 살면서 이렇게 장시간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기가 쉽지 않다.
아침마다 미사를 같이 하고 식사를 같이 하지만
서로의 사도직이 달라 퇴근 시간도 각각이다.
특히 인천에서 혼자 살며 '술집'을 경영하시는 신부님은
일주일에 한 번, 공동체날에 김포 공동체에 오신다.
그래서 함께 살 때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떨어져 지낸지 11개월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맛난 간식도 사먹고
둘 다 좋아하는 커피에 휴게소에서 파는 것 치고는 좀 비싼 커피도 나누면서
근래에 사연들로 나들이 기분을 한껏 내 보았다.
9시가 넘어서 장례지에 도착하니 무려 4시간이 훌쩍 넘는 먼 거리다.
그렇지만 오는 내내 그 시간을 잊을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나들이' 장례식 참석이 돌아가신 신부님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다 싶었다.
또 몇 몇 예수회원들을 만나면서 그래도 수도형제들이 혼자서, 혹은 둘이서 찾아 준
축제의 장이 더 풍성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차를 몰고 광주에서 찾아 온 한 신부님은 거기에서도 4시간 가까이 걸렸다며
'혼자'서 차를 몰고 오는 길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우리 팀이 자랑스레 나누었던 함께 차를 몰고 온 여정에 살짝 부러움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돌아갈 길이 벌써부터 겁이 난다며 엄살을 부리신다.
상주인 신부님은 마지막 수도형제들의 발걸음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주일이 끼어 4일장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약간은 피곤함이 더해 졌지만
그래도 이렇듯 형제들의 찾아줌에는 고마움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내내 졸음(?)운전을 하면서
뒷 자리의 동기 수사님은 여전히 꿈나라이고
옆 자리의 신부님은 자다깨다 하면서 졸지말라며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시는데
새벽 2시가 넘어서 공동체에 돌아왔지만 유쾌함이 가득하다.
장례식이 어쩌면 고인이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면
그래도 찾고 회상하는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추억을 나누는 '축제'가 된다면 너무 억지스러울까?
오늘 내가 다녀온 장례식은 오고가는 길에
그리고 식장에서 모두의 얼굴에 '따뜻함'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