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영적인 깊이 본문
1독서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복음말씀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단상
누군가 묻는다.
"수사님, 수사님도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나요?"
망설임이 없다.
"당연히! 제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죠"
그만한 때는 아마도 내 자신에 대해 '과대 평가'하고 있다가
충격같이 내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볼 때가 그러하다.
'이마 저마'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그거와는 다른 모습인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한심하고, 용기없고, 부끄럽고, 이기적인 모습' 등 등이 그렇다.
이런 날은 마음도 우울하고 몸도 덩달아 힘이 없다.
양성장 신부님께서 누군가에게 아주 세게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영적인 깊이가 없다'
한번씩 곤두박질 치는 깊은 고독에서
그만 툭 툭 털고 솟아 올라와야 할 텐데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가득할 때는
한 참이나 그 바닥에서 헤매고 만다.
매번 이런 모습일 때 '영적인 깊이가 없다'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반복되고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수도가족, 사도직, 하느님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더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교만스런 말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세상에 살 때는 악신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세상이 알아서' 온갖 말로 유혹해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도생활을 하게되면서 악신의 본격적인 움직임을 매일매일 겪게 된다.
이것에 눈 감고, 귀 막아 버린다면 그저 그런 수도삶
혹은 이도저도 아닌 삶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매일매일 이만한 것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의 선택은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지만
결국은 내가 하게 된다.
성령님, 당신의 길을 제게 보여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청하는 것 뿐....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복음말씀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단상
누군가 묻는다.
"수사님, 수사님도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나요?"
망설임이 없다.
"당연히! 제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죠"
그만한 때는 아마도 내 자신에 대해 '과대 평가'하고 있다가
충격같이 내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볼 때가 그러하다.
'이마 저마'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그거와는 다른 모습인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한심하고, 용기없고, 부끄럽고, 이기적인 모습' 등 등이 그렇다.
이런 날은 마음도 우울하고 몸도 덩달아 힘이 없다.
양성장 신부님께서 누군가에게 아주 세게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영적인 깊이가 없다'
한번씩 곤두박질 치는 깊은 고독에서
그만 툭 툭 털고 솟아 올라와야 할 텐데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가득할 때는
한 참이나 그 바닥에서 헤매고 만다.
매번 이런 모습일 때 '영적인 깊이가 없다'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반복되고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수도가족, 사도직, 하느님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더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교만스런 말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세상에 살 때는 악신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세상이 알아서' 온갖 말로 유혹해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도생활을 하게되면서 악신의 본격적인 움직임을 매일매일 겪게 된다.
이것에 눈 감고, 귀 막아 버린다면 그저 그런 수도삶
혹은 이도저도 아닌 삶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매일매일 이만한 것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의 선택은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지만
결국은 내가 하게 된다.
성령님, 당신의 길을 제게 보여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청하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