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Agere contra 본문
1독서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복음말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단상
'하면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군대식 용어에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은 감염되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를 일으켜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도 한 순기능이 있었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용어처럼 쓰이다 보니
저마다 다름을 타고난 것을 무시하더니 이곳저곳에서 역기능을 양산하기도 했다.
아마도 아무런 자원이나 기술이 없던 시절
'노력'만이 유일한, 사람만이 넘쳐났던 그래서 그들만을 믿고 살 수 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한이 서린 용어일지도 모른다.
예수회 행동양식을 나타내는 용어 중에 'Agere contra'라는 말이 있다.
'거슬러 행하라'라는 뜻이다.
표면적인 느낌에서는 '하면 된다'와 매우 닮았다.
마치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느낌이랄까!
예수회와 예수회원들의 행동양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머리는 하늘나라로 향하되 몸은 땅에 굳건히 서기'
매우 이상적이면서도 또 매우 현실적이기까지한
그래서 하느님 빼고는 이 땅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주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을 자유로움을 살게 된다.
물론 아직도 내공이 일천한 나는 그 자유로움까지는 고군분투 갈 길이 멈에도
분명하게도 그렇게 살고 계시는 존경하는 선배들이 지천에 계시니 희망을 둔다.
다시금 '아제레 콘트라'로 되돌아 가서
스페인 왕비의 기사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하면된다'의 군대식 표현과도 유사한 이 말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무질서한 애착들,
즉 나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 오랜 악습들,
거부감, 저항, 혐오감 등 등을 회피함 없이 몸을 내던져 온 몸으로 겪으란 이야기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발목을 붙잡는 것들에 '거슬러 행하다' 보면
어느사이 면역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온통 무질서한 애착 안에서도
비로소 그것들에 마주하여 씩씩하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다는 뜻이다.
첫번은 힘들지만 두번 세번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몸을 던지다 보면
여전히 두렵기는 하겠지만 한번 두번 희망을 두던 것들이
세번 네번 몸에 새겨져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로만은 남아 있지 않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아제레 콘트라'는 이냐시오 성인의 탁월한 인간이해에 대한 훈련법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살면 좋겠다.
깨달음들 추구하다보면 도인처럼 살 수 있으리라.
새록새록 삶의 지혜들이 밝혀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지만 혼자만의 득도는 예수회원의 삶의 양식이 아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지옥불로 뛰어들겠다는 성인의 말씀처럼
이 땅에서의 '이웃영혼의 구원'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예수회원들의 구체적 행위다.
예수회원들이 산중에 살 수 없는 이유다.
얼마든지 깨달은 체하며 살 수 있겠지만 진흙탕 같은 이 땅에서 굴러야할 팔자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게 되는 하느님 나라의 이 땅에서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예수회원의 훈련 용어인 '아제레 콘트라'는 비로소 자유로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몸에 배인 것처럼 앉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잠을 자다가
깨어 부르는 목소리 있어 화들짝 놀랐다가 '거슬러 행하던' 것들이
나를 하느님께 이끄는 기쁨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가 씩씩하게 미사 준비를 해 두고
조용히 나앉아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다가 '주님 주님' 부르더니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 조각 알아듣는 것이 좋아 또 머물렀다가....졸다가, 깨다가....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복음말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단상
'하면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군대식 용어에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은 감염되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를 일으켜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도 한 순기능이 있었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용어처럼 쓰이다 보니
저마다 다름을 타고난 것을 무시하더니 이곳저곳에서 역기능을 양산하기도 했다.
아마도 아무런 자원이나 기술이 없던 시절
'노력'만이 유일한, 사람만이 넘쳐났던 그래서 그들만을 믿고 살 수 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한이 서린 용어일지도 모른다.
예수회 행동양식을 나타내는 용어 중에 'Agere contra'라는 말이 있다.
'거슬러 행하라'라는 뜻이다.
표면적인 느낌에서는 '하면 된다'와 매우 닮았다.
마치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느낌이랄까!
예수회와 예수회원들의 행동양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머리는 하늘나라로 향하되 몸은 땅에 굳건히 서기'
매우 이상적이면서도 또 매우 현실적이기까지한
그래서 하느님 빼고는 이 땅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주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을 자유로움을 살게 된다.
물론 아직도 내공이 일천한 나는 그 자유로움까지는 고군분투 갈 길이 멈에도
분명하게도 그렇게 살고 계시는 존경하는 선배들이 지천에 계시니 희망을 둔다.
다시금 '아제레 콘트라'로 되돌아 가서
스페인 왕비의 기사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하면된다'의 군대식 표현과도 유사한 이 말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무질서한 애착들,
즉 나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 오랜 악습들,
거부감, 저항, 혐오감 등 등을 회피함 없이 몸을 내던져 온 몸으로 겪으란 이야기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발목을 붙잡는 것들에 '거슬러 행하다' 보면
어느사이 면역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온통 무질서한 애착 안에서도
비로소 그것들에 마주하여 씩씩하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다는 뜻이다.
첫번은 힘들지만 두번 세번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몸을 던지다 보면
여전히 두렵기는 하겠지만 한번 두번 희망을 두던 것들이
세번 네번 몸에 새겨져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로만은 남아 있지 않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아제레 콘트라'는 이냐시오 성인의 탁월한 인간이해에 대한 훈련법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살면 좋겠다.
깨달음들 추구하다보면 도인처럼 살 수 있으리라.
새록새록 삶의 지혜들이 밝혀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지만 혼자만의 득도는 예수회원의 삶의 양식이 아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지옥불로 뛰어들겠다는 성인의 말씀처럼
이 땅에서의 '이웃영혼의 구원'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예수회원들의 구체적 행위다.
예수회원들이 산중에 살 수 없는 이유다.
얼마든지 깨달은 체하며 살 수 있겠지만 진흙탕 같은 이 땅에서 굴러야할 팔자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게 되는 하느님 나라의 이 땅에서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예수회원의 훈련 용어인 '아제레 콘트라'는 비로소 자유로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몸에 배인 것처럼 앉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잠을 자다가
깨어 부르는 목소리 있어 화들짝 놀랐다가 '거슬러 행하던' 것들이
나를 하느님께 이끄는 기쁨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가 씩씩하게 미사 준비를 해 두고
조용히 나앉아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다가 '주님 주님' 부르더니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 조각 알아듣는 것이 좋아 또 머물렀다가....졸다가, 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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