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가 예수다!” 본문
“내가 예수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 마태 17,12
미사 강론 중에 ‘내가 예수요’라고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새벽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저 신부가 아침부터 뭔 소리를 하나?’라는 표정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내가 예수입니다’라고 급 고백을 해 보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사비오 신부가 지금 뭔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신다.
그렇다. 아무리 내 쪽에서 ‘내가 예수요’라고 외쳐도
신자분들은 ‘이게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린가’ 할 것이다.
할아버지 신부님 역시 내가 평소에 워낙 엉뚱한 질문을 해대니
‘이번엔 또 무슨 심사인가?’ 했을 터이다.
내가 아무리 예수라고 고백을 해 보아도 누구 한 사람 그것을 믿어 주는 사람이 없다.
저 신부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아직 잠이 덜 깼나?
오늘은 또 무슨 심사인가?
라는 표정이다.
그렇다. 세례자 요한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엘리야’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예언자’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을 지켜 본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 ‘예언자’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역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커밍아웃 한 적이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오늘의 복음 처럼 ‘사람의 아들’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군중들은
그분이 전한 하느님 말씀과 가르침 또 그 말씀대로 행하는 행동들을 보고
그분을 향해 ‘그리스도’,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예언자’,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은 고백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예언자와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거룩함, 지혜로움, 통찰력, 청량감 등 등
전하는 이의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권위에 의해서 그렇게 고백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가 예수요’라고 이쪽에서 백날 떠들어도 다른 이들은 코웃음을 칠 뿐이다.
신앙고백이란 그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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