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단 한 명이라도 ‘감사’한 일이다 본문
단 한 명이라도 ‘감사’한 일이다
나병환자 열 사람이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 루카 17,12-13;16
며칠 전 예수회 한국 관구의 내년도 입회자가 알림 메일을 읽고 조금 놀랐다.
해가 갈수록 수도생활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이 점 점 줄고 있고
그래서인지 매년 수도회 입회자 역시 소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올 해 입회자가 단 ‘1명’이라는 소식은
해외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는 입장이지만
언제나 친정(?) 집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기에
(가끔은 선교지에서 한국 예수회의 성장하는 모습에 자부심도 느껴가며)
이런 궂긴 소식에는 괜히 힘이 빠진다.
작년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스페인 관구의 연세 많은 신부님들의 낮은 탄식이 꼭 지금 나의 그것이 아닐까
예수회는 입회 후 수련원에서 2년간 수련을 받고
청빈, 정결, 순명의 수도생활을 하기 위한 ‘첫 서원’을 하게 되는데
예수회 스페인 관구 4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서원자가 0명인 해와 마주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스페인 예수회원들의 망연자실해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예수회 창립 멤버인 스페인의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니콜라스 보바디야
쟁쟁한 예수회 성인들인 알퐁소 로드리게스, 프란치스코 보르지하 등 등
20세기까지 6개의 관구를 유지하며 성소자들로 차고 넘쳤던 스페인 예수회가
2010년 단 한 개의 관구로 완전히 통합되더니
이제는 서원을 발하는 이가 1명도 없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현장에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 온 각국의 예수회원들도 있었으니
스페인 발 쇼크는 우리 모두에게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 역시,
2019년 예수회 한국 관구 입회자가 ‘1명’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수도 생활이 젊은이들에게 별 매력을 주지 못하고
교회 역시 청년들의 모습을 점 점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게다가 세상에는 호기심 가득한 것들이 교회의 진리를 대신하고 있으니
청년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교회로 발걸음을 할 이유가 없다.
예수님의 진리 따로 행동 따로 교회는 그이들이 희망을 거둔 지 오래다.
활기 띤 대화도, 생명력 가득한 기쁨도, 서로 형제애를 나누는 공동체도 희미해졌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간절한 외침도
이미 가난한 이들에게 문턱을 한 없이 높인 교회는 더 이상 배울 수가 없다.
그러니 세상과 격리된 울타리 속 세상만을 위한 교회가 되어 간다.
성당은 ‘미사’, 즉 주일 전례 만이 떠오른다면 내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일까.
그런데 그 많은 떠나간 이들 중에 ‘한 명’의 젊은이가 수도회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다른 호기심 많은 것들이 젊은이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오직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그의 전 생을 걸어 보겠다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희망을 보았고, 그분의 행동에서 기쁨을 발견하여
그분 처럼 살겠다 한다.
그렇게 청년은 약점 많고 실수 많은 예수회의 문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니 그 귀한 인연에 우리 예수회원들은 당연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멋진 선물을 보내 주신 그분께 얼른 달려가 찬미를 드려야 할 것이다.
좋으신 하느님, 귀하고 소중한 인연에 감사를 드리며 나의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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