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겸손할 수 있는 순간 본문
피정 중에 매일 성체 현시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는 순간 그분은 늘 여기, 우리 곁에서 함께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의식하지 않을 때 비로서 저 높은 곳 십자가에 달려 계실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 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때, 우리는 겨우 조금은 겸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겸손해 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무릎은 이리 아파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86세 소네 신부님이 몸을 굽혀 무릎을 꿇고 성체 조배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져 나도 덩달아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아뿔싸! 5분도 지나지 않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올라왔다. 뱁새가 황새 따라 했다가 오랜만의 무릎 꿇음이 오히려 성체 현시 내내 눈은 제대 위 성체를 향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아픈 무릎을 향했다. 그래도 한 번 앉은 것 그만 둘 수 없겠다 싶어 마지막까지 버텼다가 일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악!’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거룩한 성체 현시 시간에 제대로 모두에게 분심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런 저런 것들이 올이 왔으니, 첫째, 일본의 순교자들이 배교를 강요 당하면서 받은 고통이 한 겨울 얕은 연못의 모래 자갈 위에서 무릎이 꿇려졌다는 것에 생각이 닿아 그 고통의 일부분을 감히 느껴 보았달까. 둘째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고 전해지고 있는데, 성체 조배를 하면서 무릎의 고통을 참느라 ‘피땀’까지는 아니어도 1시간 내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니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느껴 보았달까.
결론은 폼도 부릴 때와 안 부릴 때를 잘 가려야 할 것. 평소에 좀 더 자주 무릎을 꿇고 성체 조배를 할 것. 오랜 만에 큰 존재 앞에 머물면서 조금은 더 겸손함을 체험하게 된 것.
면담 시간에 시오노야 지도 신부님께서 “사비오 신부 정말 열심히 기도하던데” 라고 한 말씀 하신다. 그 말에 괜히 무릎이 더 아파 온다.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겸손할 수 있게 은총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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