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본문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 후 교회 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 변화의 물결 중에 ‘예수회’ 안에서도 아주 직접적인 움직임이 있었는데, 바로 어제까지 함께 수도생활을 해 왔던 많은 형제 회원들이 환속을 택한 것이다.
그이들이 수도회를 떠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교회 밖에도 하느님의 구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었다’라는 공의회의 결정이 그것이었다. 이제까지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래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천명해 왔으나, 공의회 이후 다른 종교, 다른 문화 안에도 우리가 모르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즉 ‘구원은 하느님의 몫이지 우리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구원론이다.
이제까지 신앙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께 신앙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왔다. 나아가 자신의 한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 즉 사제나 수도자의 성소를 선택한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이 땅에서 직천당행(?) 티켓을 미리 손에 쥘 수 있겠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교회가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가 다른 문화, 다른 종교 안에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 그분의 진리의 빛이 드러날 수 있다하니 굳이 가톨릭이 신자가 아니어도, 굳이 수도자의 삶을 살지 않더라도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의 빛이 드리워진 양심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1965년 공의회 폐막 이후 근 10년 동안 11,000 명이 넘는 예수회원들이 수도원을 떠났다. 어제까지 함께 미사 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사도직을 행했던 형제 회원들 3분의 1이 수도원을 떠난 것이다. 남자 수도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예수회가 이런 상황인데 다른 수도회에 말을 더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게 수도회에 남은 형제 회원들은 변화의 물결 앞에 어쩔 줄 몰라했고, 자신들의 수도 삶에 드리워진 불안한 미래에 매일 같이 걱정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예수회의 총장직을 맡고 있던 아루페 신부님은 모든 예수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을 전한다:
“형제 회원 여러분 이와 같은 변화에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더 많은 수의 형제들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해서 수도회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더 많은 수의 형제들이 수도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언뜻 보면 아루페 총장 신부님의 이 말이 어처구니 없이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분은 오늘 복음말씀의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루페 총장 신부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더 많이 그분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이 그분께 기대고, 그래서 더 많이 그분께 사랑 고백 하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 당신 곁을 하나 둘 떠나가는 제자들의 뒤 모습을 보시며 다시금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질문했듯이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치 앞도 알 수 없던 변화의 물결 속에서 각자의 답을 찾아 떠나간 예수회원들이 있었듯이 그리고 또 남아 지금껏 해왔듯 미사를 드리고 밥을 먹고 사도직을 수행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가듯이, 오늘 수많은 변화 앞에 놓인 우리 신앙인들의 삶 역시, 그분께 사랑 고백하는 삶이길, 그럴 수 있기를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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