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링 위에서 버텨라 본문

매일의 양식

링 위에서 버텨라

해피제제 2017. 5. 4. 15:40

거리 미사를 다녀오다가 얼어버린 몸을 좀 녹일 겸, 따뜻한 오뎅국물이라도 먹고가자며 공부 중인 수사님들을 살짝 꼬셨습니다.

겨울 방학은 했지만 기말레포트 제출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도 몸을 빼던 수사님들도 제 불쌍한 표정에 함께 나서줍니다.
2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수사님에게 신학원 생활이 어땠는지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최근의 내적 상황을 풀어 놓습니다.


얼마 전 원장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자기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가 이럴려고 수도자가 됐나’ 라는, 회의가 들더랍니다.


지난 2년 동안 수련을 받으면서, 너무도 좋았다고 합니다.

군인 출신인 수사님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수련원의 잘 짜여진 일과가 너무도 편했다고 합니다.

다른 형제들이 수도 규칙으로 힘들어 할 때, 자신은 공동 생활이 무척이나 수월하고 행복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2년간 수련원에서 규칙대로 살다가,

신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주어진 자유와 그 자유에 대한 책임에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첫 학기는 수련원의 규칙을 신학원에까지 가져와 그런대로 수도자의 꼴을 유지하며 사는 듯 보이다가,

2학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공부할 분량이 많아지고, 주중에 한 번씩 노동자센터에서 노동자들과 복음을 나누는 사도직을 시작했고,

게다가 공동체 안에서 담당 할 업무 등이 늘어감에 따라, 기도 시간을 빼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딴 생각으로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수도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이랍니다.


따뜻한 국물 마시러 왔다가 후배 수사님의 하소연을 덤으로 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사님의 그 하소연에 몇 번이나 웃음이 나왔습니다.

수사님 모습에서도 저의 ‘적어도 수사’의 모습이 보였고, 자신의 힘으로 용을 쓰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본인이 체험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규칙, 이 수도생활, 이 공부, 이 사도직, 이 삶들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 망신창이가 되어서야, 그때서야 비로서 자신의 약함과 가난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기대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링에서 내려오지 말고, 케이오가 되더라도 링 위에서 쓰러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본인의 모습과 수도회의 모습에 실망하여 링을 떠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만,

치이고 까이고 두드려 맞더라도, 하느님의 두 손바닥 위에서 ‘버텨라’ 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면,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하느님은 또 무엇인가 수사님께 필요한 선물을 마련해 주실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막내 수사님을 응원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수사님이,

‘신부님! 저는 이제 그 링마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똥그랗게 떴더니,

지난 달 관구장 신부님과 면담 때,

‘형제는 우리 수도회랑 맞지 않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성소를 식별하라’며,

연 피정을 다녀오는 1월까지 성소식별을 권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제서야 이 자리의 고민 전부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았던 선배 수사님이, 갑자기 퇴회를 권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1년차 수사님이,

아니! 저렇게 착하고 열심히 살던 선배가, 어느 날 예수회랑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퇴회를 권고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고민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더 큰 고민을 앞에 둔 사람은, 후배 수사님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그 엄청난 소식 앞에서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모습에서 어떤 허허로움을 느꼈습니다.

수도회든 세상 한 가운데서건 이제는 살아가는 장소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어떤 허허로운 지혜 말입니다.


수도회라는 링 안에서 어찌 되었건 ‘버텨라’,
세상 삶 안에서 포기하지 말고 ‘버텨라’ 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누구든 이 어려운 세상에서 한 세상 살아낸 것 만으로도 대견한 일입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면 더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했더라도 이 고통 가득해 보이는 세상 안에서 고군분투 살아낸 것만으로도,

그분께서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버티다 보면, 그분이 또 그 일을 통해 어떤 선물들을 마련해 두실 것입니다.

그러니 내 심겨진 자리에서 뻣팅기십시오. 그럴 수 있기를 청해 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