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내가 살아야 겠다' 본문

매일의 양식

'내가 살아야 겠다'

해피제제 2019. 5. 15. 04:57

 

내가 살아야 겠다

 

이 나이에도 시험을 본다. 사제 서품 전 일본에서의 신학 공부가 마지막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내 생애에 다시는 시험 치를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분은 늘 내 계획을 이렇게 보란듯이 가볍게 되돌려 놓으신다.

 

새롭게 시작한 공부가 교회사. 나가사키 ’26 성인 기념 박물관에서 일을 하게 된 경위로 팔자에도 없던 역사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니다. 이것 또한 그분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때 전공이 어쩔 수(?) 없이 경영학이다. 미래에 밥 벌어 먹어야 하니까 그리고 다니던 은행에서 관련 학과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정보에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처음 원서에 기입했던 과는 사학과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라면 졸리운 눈 비벼가며 귀를 쫑긋대던 나였기에 처음부터 역사와는 운명처럼 엮인 사이다.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돌아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것도 이국 땅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교회사공부를 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그분의 선물이라고 밝힌 이유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했지만 그 좋아하는 것을 다른 자리에 가서도 계속 손에서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렇게 선물처럼 쥐어 주신다. 우리 삶에서야 10년이고 20년이지만 그분 계획 안에서야 금방(?)이다. 그러니 지금 실현되지 않았다고 실망할 일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짜라면 다른 곳에 가서도 늘 관심을 가지고 그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분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방식으로 내 좋은 것들을 이루어 주신다. 거듭 거듭 내 삶을 놓고 보자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지금 아니어도 실망할 일이 아니다.

 

나가사키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16세기 선교사들의 편지와 저작들을 읽기 위해 1년간 계획으로 어학 연수를 왔던 것이 그렇게 내 발목을 붙잡았다. ‘6개월 어학 공부를 더하고 싶다라는 청원에 내 상사인 예수회 일본 관구장 신부님은 이곳에서 교회사공부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한 마디 너무도 쉽게 건네셨다. 그렇지만 수도회 장상의 말이라면 그분이 흰 것도 검다라면 그렇게 알고 순명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나는 부랴부랴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언어 자격 시험은 한국인 불굴의 암기 공부법으로 간신히 턱걸이 통과는 되었지만, 설마 밥 주세요. 화장실 어디에요라는 언어 구사 능력으로 공부를 하도록 허락을 해줄까 라는, 차라리 떨어트려 주면 일본으로 돌아갈 공식적인 이유가 생기는 것이므로 그것만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대학측에서 일본 죠치 대학에서의 리첸시아학위가 있다는 것을 빌미로(?) 내게 교회사 리첸시아과정을 덜컥 허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오늘 나는 중세 교회사’ 1년 과정 논술 시험에서 달랑 한 문제를 가지고 장장 3시간이나 답안지를 써 내고 나와야 했다.  

 

겨우 밥 주세요라는 언어 구사 능력으로 시작한 지난 1년간의 대학원 공부는 흔한 말로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처절한 생존기에 다름 아니다. 오죽하면 공동체 원장 신부님이 회원들 앞에서 사비오 형제, 주말 도서관 출입 금지령까지 내렸을까!

 

학기가 시작되고 일체 도서관 열람실을 떠나지 않는 시체 같은 내 모습을 보고는 급기야 공동체 원장 신부님이 이런 결정까지 내린 것이다. 지금도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는 사정은 매 한 가지이지만, 그래도 화목토 오후에는 수도원 옆 울창한 숲 길을 달리고도 있고, 주일에는 외부에서 미사가 있기에 어쩔 수없이 미사 겸 마드리드 도시 산책을 이유로 밖으로 나가고는 있다. 참고로 나는 지금 대학 내에 있는 교수 공동체에서 머물고 있다보니, 공동체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대학 울타리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

 

벗들의 어떻게 살고 있냐?’는 질문에, ‘요즘은 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냐라는 물음에 그 마음 바쁜 일들에 자꾸 밀려 이렇게 2년이 지나고서야 사정을 밝힌다. 아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솔직한 이유는 내가 살고 싶어서이다. 그분이 들려 주는 것들을 자꾸 외면하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아서 펜을 들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꾼으로 써 달라는 기도를 아주 오랫동안 드렸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하러 나 앉은 동안에는 자꾸 말을 걸어 주시고, 보여 주신다. 그런데 그분이 보여 주신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하려면 고요한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밥 주세요정도의 언어 능력으로 매일 같이 읽어야 할 자료와 책들, 그리고 세미나 발표와 제출해야 하는 레포트들을 해결하기에는 원장 신부님의 주말 도서관 출입금지령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더 줄일 수도 없는 잠 시간까지 줄여야 할 지경이다. 그러니 자꾸 그분의 이야기는 외면하게 되고 그래도 자꾸자꾸 기도의 자리에 나가면 어김없이 들려 주시는 이야기들에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죽겠다 싶어 다시금 그분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렇다. 내가 살아야 하겠다.

 

그래도 그분께 정말이지 고마운 것은 이 외면하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당신이 건네 주시는 말들에 다음에요. 다음에요”, “언젠가 시간이 나면요라고 답하지만 그래도 기도의 자리에 나 앉으면 바로 곁에서 지치지 않고 말을 걸어 오신다. 올라 오는 이야기들에게 눈 앞에 닥친 과제들을 핑계로 계속 외면하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게 말 걸기를 그만두지 않으시는 그분이 나는 지금 눈물나게 고맙다. 이야기 꺼리가 자꾸 넘처 흘러서 꾹 꾹 눌러 놓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게 만드셔서 내 스스로 살아야 하겠다싶게 당신께 항복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더 도망칠 수도 없고 나는 이제 그분의 이야기를 하련다.

 

그러고보니 일주일에 한번씩 옆 마을 수녀원에서 봉헌하는 미사와 짧은 강론으로는 당신이 만족이 안되시나 보다. 그것도 그런 것이 내 짧은 스페인 말로 미사어구, 수식어구, 앞 뒤, 거두절미하고 딱 오늘의 복음만 나누다 보니 나도 그분도 성에 안차나 보다. 그러니 자꾸 내게 눈치를 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약함 가득한 나눔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빚쟁이처럼 독촉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살고 싶은 마음에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사랑이신 주님, 당신이 들려 주시려는 이야기들을 제 약함으로 나누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