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가보지 않은 길 본문
26성인기념관에서 나가사키 항구 쪽을 바라보면 멀리 '여신대교'가 보인다.
그때마다 '언젠가 저 다리를 건너 보아야 할텐데...'라며 자꾸 미뤄 두었는데
며칠 전 드디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주말 아침 수도원 뒷 산 타테야마 공원(立山公園)으로 산책을 나섰다가
이왕 나선 김에 산을 돌고 돌아 콘벤투알 성모의 기사 수도원 뒤쪽의 루르드 동산까지 걸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주말 아침이라서인지 거리도 한산했는데 루르드 동산 역시 인적 하나 없었다.
그래서인지 고요한 산 속 시원하게 그늘이 쳐진 동산 벤치에 앉아 한 참을 숨을 고르며
그렇게 성모님 앞에 머물러 루르드 성수로 목을 축이고 잠시 침묵 속에 머물러 보았다.
성인품에 오르신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 이곳을 방문하셨기 때문인지
나가사키 교구의 공식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순례지 3곳,
즉 니시자카 '26성인기념성당', 모토하라 '십자가 산'과 더불어
이곳 성모의 기사 수도원 '루르드 동산'이 그렇다.
5월이면 많은 신자들이 찾는 곳이지만 올 해는 역시나 코로나19 때문에
교구는 물론이고 본당들도 성모동산 방문 계획이 전부 취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동산 전체를 폐쇄 하지는 않았기에
나처럼 개인적으로는 찾을 수는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목적지인 메가미오오하시는 굽이굽이 산길과 작은 마을들을 돌고
또 지도 한 장 달랑 지니고 나선 초행길인지라 수십 번 확인을 해야 했던지라
집을 나선지 4시간 반만에 대교 위에 올라 설 수 있었다.
볕이 뜨겁게 내리 쬐지는 않았기에 고생스런 걷기는 아니었지만
또 그렇게 화창한 하늘이 아니었던지라 멋진 풍경을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핸드폰 사진이 여-엉 마뜩찮다.
그럼에도 대교 위에 철퍼덕 주저 앉아 시원한 바람을 한참을 즐기면서
해가 잠시 얼굴을 내민 순간에 잠시나마 푸른 바다와 하늘에 감탄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이라도 하느님 감사!!!
뒷 산 공원에 설렁설렁 다녀올 요량으로 대충 챙겨서 나선 걷기라 부실하게 때운 점심과
그래서 더욱 서두른 터에 쉬는 것도 겨우겨우 시늉만 했더니 다리가 많이 무거워졌다.
결국 대교 밑 카미노시마(神の島) 마을에서 주말 오지 않는 버스를 한 참을 기다린 끝에
승객도 없는 버스에 반쯤은 널부러져 내 살던 곳으로 되돌아 왔는데 겨우 20분 남짓 걸렸다.
무려 5시간 이상 걸었던 길을...
그럼에도 가끔은 이렇게 무계획 걷기도 좋아 보인다.
모든 것에 계획을 세워야 움직일 수 있는 것들에서
그냥 저냥 손에 잡히는 것만 들고서 나서 보는 일이 이리도 가슴 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목적지를 정해 두고, 아니 목적지가 없이도
내 익숙하지 않은, 한 번도 걸어 보지 않는 길들로 나서 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그래 보인다.
이렇게 나설 때 비로서 내가 믿는 신을 더욱 의지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께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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