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까미노 길 위의 고마운 벗들 본문
까미노 길 위의 고마운 벗들
아까 낮에 보리스(크로아티아)가 묻는다.
'왜 혼자 다니냐?'고, '왜 길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냐?'고
그래서 '지금 알베르게 에서 만나지 않았냐!'며 웃음으로 답한다.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 대한 호기심을 표한 것 이기에...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걷다 보니 혼자의 시간도 필요하고,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 하다는 것을...
그이들에게 나는, 혼자서 걷기 좋아하는, 그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않는,
조금은 이상한 동양인 친구인걸까?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따라 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살아 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나는 듣고 있는 사람이다.
또 그래서 어느 정도 흐름 뒤에는 살짝 자리를 비껴서 앉게 된다.
그런 모습이 그이들에게는 조금은 흥미거리였는지도 모르겠다.
- 이 새벽 낮 동안의 일들을 기록하는 동안
잠 못 이루고 있는 키르란(아일랜드)이 아래층을 서성인다.
나도 그렇게 깼지만
그이 역시 위층의 누군가의 고단한 코골이들에 잠을 이룰 수 없나 보다.
서로 멋적게 웃으며 그렇게 한 참을 서성인다.
그이도 나도 잠을 이룰 수는 없지만
코골이 순례자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다.
우리의 멋적은 웃음이 그래 보인다.
나는 동시에 저이들의 저마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청해 본다.
홀로 걷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응원해 주는 벗들이 있다는 것을, 함께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 주는 이가 있고, 누군가 관심을 주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너의 삶을 알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의 이러한 관심이 서로에게 전해 지기를,
말 하는 이가 있고, 듣는 이가 있고, 웃어 주는 이가 있고,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동양인 하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걷는 일행으로 밥 때 마다 꼭 꼭 불러 주는 벗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러면서 나 역시 좀 더 자리를 지키며
그이들이 전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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