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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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코골이 대응법
새벽 코골이에 잠을 깼다.
몸을 뒤척여 '내가 당신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다' 하는 신호를 주지만 그때 뿐,
곧 또다시 그이 나름의 고단함을 표한다.
그러니 그이의 탓을 할 수가 없다.
그이도 오늘 하루 그 만큼 고단했으리라.
카미노 순례에서 이쪽 알베르게에서 저쪽 알베르게까지 25-30킬로미터,
하루 6-7시간을 걷게되니,
게다가 숙박료가 싼 국립 알베르게를 찾다 보니 별의 별 순례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다른 순례자들의 코골이에 잠을 못 이룬다면 사립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조용한 반면에 숙박료가 두 배가 되기에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가난한 순례자들은 신경이 왠만큼 예민한지 않는 한
시립 알레르게로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며칠 간 알베르게를 체험 한 후 내 나름의 ‘코골이 대응법’을 찾기도 했다.
바로 여느 순례자 보다도 빨리 잠 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새벽 2시를 넘겨서 깨도 왠만큼 피곤이 가신 뒤라
더 잠을 이루지 못해도 감당할만 하다.
저쪽 어둠 속에서도 나 처럼 잠을 깬 이가 있는지 결국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새벽 2시 27분, 코골이 소리에 나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그 새벽에 커피를 찾는다.
10시 전에 잠 자리에 든 터라 이 새벽 더 이상 잠을 못 이루어도 그리 피곤하지는 않다.
이렇게라도 하루를 다할 수 있고 그래서 나의 하느님 그분께 감사로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코골이의 순례자와 몸을 일으켜 나가 버린 또 다른 순례자
그리고 이 밤 개의치 않고 더 잠들어 있는 더 많은 순례자들을 위해
나의 하느님 그분의 축복을 더한다.
"주님 저이들에게 평온한 쉼을 허락 하소서.
- 이름 모를 친구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그이들은 늘 낯선 순례자를 향해 말을 걸어 주고 웃어 주고 사정을 묻는다.
한 순례자가 역시나 이 새벽 나 처럼 잠을 이룰 수 없는지 맨발로 서성인다.
그러면서 '코골이에 잠을 이룰 수 없다'며 난처한, 그러나 귀여운 미소로 말을 걸어온다.
저 청년에게도 나의 하느님 그분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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