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나는 ‘평화’가 아닌 ‘분열’을 주러 왔다 본문
나는 ‘평화’가 아닌 ‘분열’을 주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평화예식’ 시간에
서로를 향해 ‘평화를 빕니다’라며 한 목소리로 주님의 평화를 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이 ‘평화의 사도’임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복음 말씀을 듣게 되면 퍽이나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니…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살아 있는 하느님’이다.
‘메시아’이며 우리의 ‘구원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 연약한 신앙인들의 이 세상살이 모델과 기준이 된다.
그분의 짧은 공생활에서 보여 주신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당당한 걸음들,
어떠한 고통 앞에서도 중립을 지킬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이 세상의 불의를 향한 정의로운 외침,
죽은 율법과 인간을 옥죄는 격식을 타파하는 생생한 가르침,
말이 아닌 행동으로 완덕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삶,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씀하시는 분…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분처럼 살라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거침없이 자유로우라 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서 살아내셨던 그대로만(?) 살면 된다.
그분은 우리 삶의 기준이자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델을 따라 살다보면
우리는 ‘평화’가 아닌 ‘분열’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정의는 불의를 가려내고
자유가 부자유를 가려내고
진실이 거짓을 가려내고
선함이 위선을 가려내고
바름이 그름을 가려내고
빛이 어둠을 가려내는
…
…
이렇게 하느님의 ‘평화’를 가리고 막는 어둠의 세력들에
예수님은 그분의 세상 삶 동안 끊임없이 ‘분열’을 이끌어(?) 내셨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께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려는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세상의 ‘분열’을 조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절대 걱정할 것이 없다.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주시고자하는 ‘평화’를 약속하셨다.
그분의 삶에서 도도하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평화’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혹여 쪼금 잘못된단들 예수님처럼 죽기 밖에(?) 더하겠는가…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께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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