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난 네가 수련원 시절에 했던 일을 기억한다 본문
난 네가 수련원 시절에 했던 일을 기억한다
바리사이: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러 알로이시오 신학원 공동체에 머물렀다.
삶 터가 외국이다보니 한국에 들를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2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갓 서원을 한 맑은 수사님도 있고
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에 아침부터 부시시한 모습으로
머리를 부여 잡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수사님도 있다.
10여년 전, 내 모습도 그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마냥 그 모습들이 안쓰럽고 또 귀엽다.
연학 수사님들의 앞으로 긴 배움의 시간들이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더 성장하는 시간이기를 내 기도에 더해 본다.
수사님들도 외국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내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나 보다
일본이 살기가 어떤지, 왜 일본에서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했는지,
요즘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좀 어려운데 현지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일본에서는 왜 그렇게 그리스도교 선교가 어려운지,
한국과 일본 천주교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만약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게 되면 신부님은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지 등 등
참으로 궁금한 것도 많은 수사님들이고
나 또한 그런 수사님들의 관심과 호기심들이 고마워
더 신이나서 이런 저런 체험들을 들려 주었다.
한 참을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막 퇴근을 해서 한 쪽에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던 동기 신부님이 불쑥 한 마디를 거든다.
“수사님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김형욱 신부는 ‘회칠한 무덤’이야
수련원 시절에 우리가 수련장 신부님 몰래 담배를 피운 적이 있는데
담배를 피운 적도 없는 쟤가, 그것이 양심에 찔려 괴롭다며 양심 선언을 해 버린거야
아니! 양심이 찔리고 괴로운 건 우리인데 왜 지가 양심선언을 하고 난리냐고 난리는…”
순간 후배 수사님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 거렸지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일을 우리 동기 신부님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에
뭐라고 딱히 반박할 말도 없고 이런 때는 쥐구멍에라도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고보니 ‘때린 놈은 잘도 잊는데 맞은 사람은 가슴에 깊게 새겨진다’니
똑 그 말이 맞는가 싶다.
동기 신부님이 내 지난 치부를 잘 알고 있으니 ‘회칠한 무덤’,
즉 ‘바리사이 같은 위선자’라 놀려도 나는 대꾸할 말이 없다.
그래서 상처가(?) 남은 동기 신부님께 또 다시 잘못을 빌었다.
“형님 내가 많이 미안해, 내가 그때는 참으로 제 잘난 맛에 살았네
지금도 별반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달라진 것은 있어 보이네
바로 내가 그런 ‘회칠한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으니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고자질을 해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내가 많이 미안해.”라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 있다면 혼자 조용히 감사 드리면 될 일,
회당 한 복판에 서서 모두가 다 들으라는 듯이 양심고백(?)을 하는 것은 뭐란 말인가?
아마도 양심이 괴롭고 아픈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데
저 “수도자씩이나 되겠다고 찾아온 인간들은” 규칙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장상들에게 고자질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듯 싶다.
그리고 그 지난 죄과를 잘 알고 있기에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모든 이들 앞에서 상기시켜 주는 내 동기 신부님에게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미안해’ 라고 사죄를 한다.
아마도 동기 신부님에게 나는 영원히 ‘회칠한 무덤’일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 부끄러웠던 시절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하느님 그분의 자비를 청해 본다.
‘자비이신 엄마아빠이신 하느님, 제가 ‘회칠한 무덤’임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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