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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본문

세상에게 말걸기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해피제제 2018. 3. 10. 22:03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1) Deciden que el Hijo se encarne para dar vida verdadera al mundo, pidiendo a María que acepte ser su madre.


2) Envían al ángel a la humilde casa de una joven y sencilla creyente para pedir su ayuda en la encarnación del Hijo, para que se su madre.


1) 그들(성삼위)아들이 마리아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승낙해  주기를 청하면서, 세상에 진정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는) 인간이 되기로 결정한다.


2) 그들(성삼위)은 예수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아들의 육화에 대한 도움을 청할 목적으로 한 젊고 신실한 신자의 집에 천사를 파견한다.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수녀님들의 피정을 동반하면서 피정 강의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딱 한 달 배운 외국말로 강연자의 강의를 알아들을리 만무하고 그래서 기도 자료집 내용을 열심히 단어 찾기 하다가 참으로 흥미로운 표현을 발견했다. 위의 1) 2)가 그것이다.


이제껏 성경의 예수 탄생신비의 대목을 읽거나 기도하면서 받은 느낌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당신 대리자인 천사를 이 땅에 보내어 당신 백성의 비참함을 보시고 이제 곧 세상의 구원자가 태어날 것을 마리아에게 고지하신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성경의 수태고지(루카 1,26-38)라는 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그 여름 이국 땅 피정 자료집에서 그렇게 큰 존재인 하느님이 작고 여린 한 소녀에게 당신 아들의 어머니가 되어 줄 것부탁하거나 승낙을 기다린다는 해석에 앗싸!’ 하는 감탄과 함께 어린아이가 깜짝 선물을 받아든 기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교회 전통 안에서도 하느님은 늘 일방적인 전달자였다. 누군가의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전지전능한큰 존재이기는 하지만, 인간인 나에게는 믿음을 요구하는존재이지, 어떤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낯선 말로 피정을 동반하면서 무심코 얻어 들은 또 낯선 표현에 이제까지 내가 경험적으로 알고, 사랑하고, 따르던 하느님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다른 각도로 다가 온 것이다. 뭐랄까. 조금은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랄까.


그런 시선으로 다시금 성경을 읽게 되어서인지 이 후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하느님의 메신저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하늘나라에서 성부, 성자, 성령 즉 성삼위의 인간 구원의 위대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자, 그 실행을 위한 첫 전달자 사명을 띤 주님의 종 가브리엘 천사는 갈릴래아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로 파견 된다. 위대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한 어린 소녀의 동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소녀를 설득할까를 고민하던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최고의 찬사를 드리기로 결심한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그런데 왠걸? 난데없는 이 엄청난 인사에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뜬끔 없이 나타난 천사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급 당황해진 가브리엘 천사는 당황해 하는 마리아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다음과 같이 자신이 찾아 온 이유를 찬찬히 풀어 설명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간 친절한 설명이었던 것일까. 가브리엘 천사의 진지한 설명과는 달리 받아 들이는 쪽에서는 더 뜨악한 소식이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는 친절한 의도는 늘 이렇게 빗나가게 마련인가 보다.


처녀가 임신이라는 엄청 황당한 설명을 들은 마리아는 기도 안찬다는 듯이 되묻는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눈 앞이 캄캄해 할 가브리엘 천사의 얼굴 표정이 볼 만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마리아를 설득해야 할 대천사는 자신이 맡은 임무가 참으로 비상식적인 것임을 처음으로 자각하며 이제부터 되도 않는 이성적인 설명을 포기하고, 이 일이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이 계획하는 프로젝트라는 것과 그 일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를 들어 마리아를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로는 역시나 신실한 신자인 마리아의 신심에 처연하게 읍소하는 모양새이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것이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되는 것이 없다.”


마리아는 아직도 100퍼센트 완전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일단은 먼 친적인 엘리사벳이 늦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며 기적이라는 말들을 하기에 저 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서 있는 가브리엘 천사가 왠지 미덛지는 않지만 일단 믿어 보기로 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의 입에서 겨우 라는 승낙의 대답이 흘러 나왔다.


하늘 나라 천사들 사이에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수난의 시작이라고 오래도록 회자된 이 사건은 하느님 아버지의 일도 인간이 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낱 계획에 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이후로 하느님의 임무를 받고 지상으로 파견된 천사들은 가브리엘 대천사의 수난을 교과서 삼아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 짜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아를 겨우 설득하고 허둥지둥 하늘 나라로 되 돌아간 가브리엘 천사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지상에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 소식 바로 하느님의 아들의 지상 탄생 프로젝크의 책임자인 가브리엘 천사의 두 번째 수난으로 기록된, 요셉이 내린 마리아와의 파혼 결정(마태 1,19)이 그것이다.


다시금 지상으로 허둥대며 달려가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등을 보면서 천사들이 자신들의 지상 파견 임무에 인간의 승낙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인간들에게 청을 해가며 허락을 구하려고 머리를 싸맨다는 사실은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요셉의 꿈에 찾아 들어간 가브리엘 천사가, 대천사 체면 다 버리고 요셉에게 무릎만 꿇지 않았지 읍소를 해가면서 마리아를 아내를 맞아 들이도록 밤새도록 설득했다는 소식에 천사들은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그이들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 오기 위해서는 인간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이것은 인간 편에서는 주가가 한껏 오른 사건이지만 하느님의 메신저들에게는 앞으로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인간의 기분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의 시작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대천사 수난의 시작일화에서 알아 들을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자비도 인간이 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분 계획이 틀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선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 진다. 예를 들어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는 장면에서 만약 베드로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이 제자하기 싫은대요라고 거부했다면? 또 세례자 요한이 예수가 세례를 달라고 청했을 때 안돼요라고 거절했다면? 앞에서 소개한 예수 탄생의 장면에서 마리아가 싫어요라고 대답했다면...


이렇듯 우리가 주님으로, 하느님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큰 존재들이 작고 여린 소녀 마리아에게 내 어머니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청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왠지 그분들이 귀엽다. 그러면서 괜히 성삼위의 존재가 친밀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런 시선으로 성경을 읽으면 새롭게 알아 듣는 것들이 많아지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그분을 알면 더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참으로 고마운 선물에 감사를 드린다.